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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퍼졌다.” 이 얼마나 쇼킹한 뉴스입니까? 오늘날의 우리들의 소원은 통일이고 당시 의 소원은 오직 독립띠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헤어져 종로거리를 지나 가는데 내왕하는 시-람도 드물었고 뭔가 수군대는 것 같았습니다. 활기 찬 거 리가 이니고 이-주 갈아 앉은 거리인 깃 같았슴니다 어떻게 보면 지니-기-는 사 람틀이 모두 딸이 없어진 것 같았슈니다. 그 당시 총독부도 1 갈 못할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정용기피. 유언비어 유포 죄, 똥제품임-매죄‘ 도박죄 등으로 사람을 마구 잡아 넣었는데 통제품암배죄 이외는 전부 단파방송사건과 관련된 듯 덮어놓고 잡아 가두기 시작하여 탄압 의 강도를 높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전시법으로 제정페서 대부분이 형을 받 고 틀어가게 된 갓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도 마음놓고 살 수가 없었습니 다. 그런 가운데서 일본이 땅한다는 깃을 아신 분들은 일제에 항거하고 비협 조직으로 나간 것입니다. 말하자띤 싱용이나 노력동원을 나가기보다 직결재 판을 받아 형무소에 들어가기를 원한 사람이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1942년 11 월경 띠국방송은 솔로몬 3차해전에서 일본은 패전해서 동남 아 각지에 있는 일본군-은 보급품이 끊끼 완전히 고립되었다고 승전의 환호성 을올리고있었습니다 시울서 다시 개성쓰로 가서 그 해 12월 중순경 아느 날인이l 정기도 경찰 부에서 방송소를 옹동 수색히-고 이이덕씨를 포승으로 묶어 잔아 갔다는 것인 니다. 섬뜩한 느낌 속에서 저도 다음날 아침에 사이가(샘간)라는 악질적인 일본 경찰에 잡혀 갔습니다. 7 억r’i는 고문은 말할 수 없이 극에 달했으며 단파송수신기를 내 놓으라는 것임니다. 씬갔는 해외 우리 독립투사 다시 말해 중국에 있는 우리 임시정부 와 u]극의 이승만박사와 딘파로 송수신을 했으니 송수신기를 내라는 것이었 습니다. 수신기도 김추-었다가 그들에게 발각되어 조시-를 받았는데 니-중에 그 … -- … [7) 갱생앵송국 단확앵흥 빼외연학사건화 생기색 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