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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빠民훌起의.훌過 광무 8년 (1904) 9월 14일(음력 8월 5일)에 발생한 2차 시홍-농민봉기는 1차 농민봉기와는 다론 성격을 지니면서 진행되었다. 1차 농민봉기의 실패의 예 와는 달리 조직회되고 계획적으로 주도해 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퍼文의 전 달 방법은 이전과 상이하지 않으나 사태의 진행을 파악하면서 지도한 능력은 탁월했다고볼수있다. 사발통문에 의해 聚쩍의 소식이 각 마을의 집강을 통해 8펠 13일까지 6개 면의 집강들에게 전달되자 셉興f.15 내의 모든 집에서는 가구당 1명씩을 차정 하여 약속된 한천변에 집결하였다, 이들은 앉거나 서서 그 황인에 노동자 모 집의 과정에서 나타난 불법성을 규탄하였다. 이때의 첫 사회자는 성우경으로 노동자 모집의 일에 그가 아전배와 결탁하여 뇌물을 받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라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곧 바로 삼막동에 사는 ?可떠l꺼이 뛰어 나와 성우경의 아전배와의 결탁은 사실이라 -- 하면서 서로 힐책하였다. 한참을 다투다가 - 1Yi〔 1p_에 사는 주사 |헤川勳괴- 더불어 노동자 모 집의 작폐에 대해 관가로 기-서 재판을 한다면 서 각각 모여 있턴 사람들을 거느리고 관가로 향해 출발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운집한 사람들 수천명 혹은 1만명 이었다고하니 그기세는가히 짐작이 갈것이 다, 이들 중 선두에 섰던 일부가 관가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관문 3개가 폐쇄되었다 이 썽 시흥직산안핵사주본 2. 농민용기의 경과 ----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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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농민봉기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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