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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이서까치 농간을 부려 空名l뻐을 만들어 10냥에서 100냥까지 거두 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다. 이와 같은 관리기강의 문란은 필연적으로 지방행 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守令의 빈번한 교체, 일시적으로 제수했다가 곧 해임시키거나 심지어 취임 중도에서 다른 곳으로 변경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누가 수령이 되어 임지에 부임하더라고 빈번한 교체로 인해 안정을 기대할 수 없었고 또한 임지 의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와 여유가 없었다. 이러한 행정부 재는 곧 지방사정에 익숙한 옵更에게 농간을 부렬 수 있는 끼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서배(倚前) 지방행정에 있어 암적인 존재였다 이들은 봉건적 신분질서 에 얽매여 자신들의 신분이나 지위향상을 도모할 수 없었고 또한 중앙정부로 부터 대우도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이전(향리)에 대한 급료기- 없었으므로 이 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하여 일반농민들을 침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방재정의 실무는 모두 이들에게 맡겨져 있었기 때문에 이활의 作뺑를 방지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향리의 폐단이 오직 그들의 처우가 불 암행어사 파견회수 (숫자는 파견호|수) 도\왕대 순조(34년간) 현종(15년간) 칠종(1 2년간) 계 (61 년간) 비율(%) 경상 8 2 6 16 16 전라 8 4 7 19 19 충청 9 6 4 19 19 경기 5 2 2 9 9 황해 4 2 2 8 8 강원 2 3 6 6 함경 4 3 2 9 9 평안 4 5 4 13 13 겨| 44 25 30 99 10( ] I조선왕조실륙l I일성록l 에 근거하여 작성 l. 세도갱치의 지배체제의 문란 …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