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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의영 (尹효炳 1900. 12 .. 14 ∼ 1960. 9. 29) 경기도 시흥(써뱃) 사람으로, 1919년 3월 28일 노온사리 ( (£ iYr;l 、IJ·''llJ 일대의 독립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당시 배재 고등보똥학교 (J안서 1: ’ ;j '~1· ;Ii;→j띠/센갖) 학생으로서 귀 향하여 있던 중, 3월 27인 갚은 동리에 사는 이정석(쑤피 { i) 이 서띤 소하 리 (I띠|띠!W ~-'!!) 일대꾀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다가 노옹사 리에 있는 경찰주재소에 연행되어 갔다는사실을알았다, $ 윤의영 이에 그는 최호천(끼!자λ)과 함께 동리사람들에게 주재소에 간혀 있는 이정석을 구하고자 제의하여 1 백여 명의 군중과 함께 주재소로 향하던 중, 내가대리(|시JJI I f아 ljl_) 주민 1 백여 명이 가세하였다. 주재소에 도착하여 그는 군중의 지휘를 밑고 최호전이 통솔하였으며, 이 종운 ( 'i쟁1fi딩) · 김 인한 c~r :i·m · 최 정 성 0갇 11:1NJ 유지호 (셰ll↓J;li) 최주환 (센 J.ia煥) 등이 선두에 서서 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띠 이정석의 석 방을 요구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은 주재소 게시핀을 쓰러뜨리고 뒷벽을 피- 괴하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나, 그 곳의 순사와 순사보들은 불을 끄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가장하였다. 이에 그는 군중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한 갈래는 자신이 인솔하고 다른 군 중은 최호천이 인솔하여 각각 이정석을 체포했던 조선인 순사보 김정환(* /ιt엣)과 최우창(센1‘괴i' |)을 짐으리 다녔다 결국 잡지 옷하고 다시 주재소에 모여서 독립만세와 이정석의 석밍-을 요 구하자, 주재소 인-에 숨어 있던 일본인 순사 적송(껴샤公)이 불을 켜고 나와 이 정석의 석방을 익;속하였다. 이에 그는 시위군중을 보통학교 뒤쪽으로 인솔히 여 그 곳에서 만세를 외치게 하고 해산시키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진기l하다가 · ……… ---(5) 황영지역의 3· l톡랩만세운동째판판결 번역푼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