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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에서 만세를 불렀으며, 또 보통학교 뒤펀에서도 만세를 부프고 해산하였다. 일파중돌맹이·곤봉을가지고간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나는단장을 갖고 갔을 뿐 게시판을 파괴한 자도 있을 수 있으나 난폭한 짓을 시킨 일은 없다. 본 건 수괴자는 최호천이고 여기에 윤의병이 가담하여 지휘하여 주재 소를 습격 한 일단은 약 200명 정도였다 『사법경찰관 작성 유지호에 대한 심문조서a 1919년 3월 28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전날 밤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것 때문 에 최순사보와 가나사와(金澤) 순사보에 의해 인치된 이정석을 구출하기 위 해 노옹사 경찰관 주재소에 쳐들어가는 것을 결행하는 것에 동네 사람 약 80 명이 모였다. 이정석의 아버지 이종운이 모인 사람들을 향히여 이정석을 빼 내 오는 것을 부탁하였는데, 최호천·윤의병 두 사람이 모여 있는 인원 갖고 는 부족하니 가래대리의 동네 사람도 규합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 일행이 가리대리로 향하여 가가호호를 방문히-여 100여 명의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었다. 최호천과 윤의병 두 사람이 어제 저녁에 이정석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주재소 순사보에게 인치되어서 오늘 밤 이를 구출첼 계획이라고 설 명한 후, 군중을 인솔하여 밤 10시경 경찰관 주재소를 포위하였더니 주재소 는 소등하고 사람이 없는 것 같이 위장히고 있었다. 주재소에 근무하는 순사 보를 찾을 목적으로 각 순사보의 가택을 포위하고 뒤졌으나 찾지를 못하고 주재소로 돌아 왔더니 일본인 순사가 나와서 최호천·윤의병 두 사람과 순식 간에 단판이 이푸어져 동순사는내일 송치를취하하고석빙시키겠다고 단언 하였으나, 이종윤F이 증서를 쓸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나 틀림없이 방면되도 록 하겠다고 해서 군중들은 만세를 높이 부르고 해산하였다. 위 소요 중 최호천이 일단을 인솔하여 순사보 최우창의 셉과 순사보 가나 사와(金澤)의 집을 포위하였는데 나는 최순사보의 집을 포위 수색할 때 문 밖에 서 있었으며, 동 순시-보는 음식점에 하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주인을 찌2장-싼철 •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