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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항일운동과 사적지 재조명 및 활용방안 15 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인근 마을에서 모인 해녀들까지 합세하여 해녀조합에 대한 성토를 하고 제주읍을 향해 행진하였다. 구좌면장이 요구 조건을 해결 하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해산하였다. 구좌면장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고 해녀조합에서는 채취물에 대한 지정 판매를 강행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해녀조합의 지정 판매에 불만 을 품어오던 구좌면과 성산면의 해녀들은 각 마을별로 회의를 여는 등 해녀 조합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어 갔다. 새로 부임한 다구치[田口禎熹] 해녀어업조합 조합장이 구좌면을 순시하는 세화리 장날을 기해 구좌면 하도리·세화리·종달리·연평리, 정의면 오조 리·시흥리 등의 해녀들은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1월 12일 종달리· 오조리 해녀 300여 명과 하도리 해녀 300여 명, 세화리 해녀 40여 명 등 64 0 여 명이 만세를 외치며 세화장으로 향하였다. 시위대는 자동차에 타 있는 제 주도사 일행을 에워싸고 구호를 외치기도 하였다. 제주도사는 해녀측의 요구 사항을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무장경관대를 출동시켜 1932년 1월 23일부터 1일 27일까지 34명의 주동자들과 수십 명의 청년들을 연행하였다. 1월 26일 우도 해녀들은 주동자를 검거하러 온 배를 에워싸고 시위를 벌이 기도 하였다. 1월 27일에는 종달리 해녀들이 검거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약 2개월여에 걸쳐 약 230여 회의 해녀들의 시위에는 약 17,000여 명이 참 여하였고 의 시위를 하였다. 시위를 주도한 해녀들과 청년들이 검거되었다. 해녀박물관과 연계하여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제주해녀 항일운동 기념탑을 건립해놓고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위원회에서 매년 제주해녀항일운동 기념식을 하고 있다. 5. 그 외의 항일운동 제주도에서의 항일운동 중 규모가 큰 위의 4개의 경우를 제외하고 각 인물 별 항일운동이나 소규모의 항일운동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고 이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행사조차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대한 연구와 추념 활동 은 제주항일기념관에서 주관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항일운동 가운데 현재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중에는 사회주 의운동 흐름과 관련된 것들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