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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화(朴鳳和) 1864.10.05~1962.02.28 / 3.1운동 / 대통령 표창 1919년 4월 4일 서산군 정미면(貞美面) 천의(天宜) 장날을 이용하여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면사무소 사환 송재만(宋在萬)과 면장 이인정(李寅正), 면내 유지 남계원(南桂原) 등이 독립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결의하면서 비롯되었다. 3월 19일 도리리(挑李里) 장날 주도자들이 격문 수백 매를 뿌리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수백 명의 군중은 이에 호응하고 시장을 누비며 행진하였다. 출동한 일본헌병과 일경에 의해 주도자들인 송재만.이인정 등이 피체되었으나, 이때 피신한 주도자들에 의해 만세시위는 다시금 추진되었다. 이들은 이웃 정미면천의 장날인 4월 4일을 기해 대규모의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4월 4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모인 800여 명의 시위군중들은 독립만세를 고창한 뒤, 박봉화의 주도로 정미면 천의리로 향했다. 천의장날에는 1,0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박봉화를 비롯한 주도자들이 이곳에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이곳의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대규모의 시위군중으로 변했다. 그들은 경찰주재소를 습격하고 건물을 파괴하고 일본인 순사와 순사보 유기우(柳冀祐) 등을 구타하면서 만세시위의 분위기는 절정을 이루었다. 이때 서산(瑞山).당진(唐津).공주(公州)에서까지 동원된 일본군경에 의해, 시위군중은 결국 해산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피체되어, 1919년 4월 25일 서산경찰서에서 보안법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