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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병] 이남규 李南珪 1855-1907 예산 출신. 자는 '원팔(元八)', 호는 '수당(修堂)'이다. 1882년 문과에 합격한 뒤 1894년까지 승정원 우승지, 형조참의 등 요직을 역임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일제의 만향을 규탄했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에 항거해 관복을 벗고 귀향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을 계기로 민종식을 중심으로 홍주의병이 결성될 때 그 후원 세력이 되었고, 이후 홍주의병이 패산하자 이용규 등과 함께 재기를 도모하였다. 충남 내포 지방의 항일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이남규는 1907년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기습 체포되었다. 일본군이 포박하려 하자, 그는 '선비는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다"고 하며 그들을 꾸짖었다.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중 아산시 송악에서 아들과 함께 참살당해 순국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