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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12월31일 화요일 11 (제156호) 독자마당 東苑 朴 鎭 錫 최근 인공지능의 공세는 고숙련 전 문직 일자리까지 위협하고 있다. 뉴 스생성 알고리즘은 기자를, 주가 예 측과 매매 알고리즘은 주식 트레이 더를, 판례 수집분석 알고리즘은 법 무 사무직의 지위를 위태롭게 만들 고 있 다 . 특히 의료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빠 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부작용을 일으킬수있는약물간간섭현상을미 리 배제하여 처방전을 자동으로 제시 하는 알고리즘은 이미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고있다. 환자의의료정보를 분 석하여 가능성 높은 질병명과 치료방 법을 제시하기도한다. 이제 멀지않은 미 래 에 인 공 지 능 이 환 자 의 개 인 주 치 의역할을하는시대가도래할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왓슨(IBM의 인공지 능 컴퓨터)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 여준다. 왓슨은2010년부터 거대한 인 류사적열망이기도하다.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아닐 까? 독일의 보쉬와 영국의 롤스로이스 자동차 생산회사의 사례처럼 오래된 기업들도 자신을 재정비하고, 지금껏 영위하던 사업의 본질을 재구상하고, 적합한 신기술을 선택하여 융합한다 면, 새로운 지속가능성(持續可能性) 을확보할수도있다. 이 러 한 현 상 을 8 0 여 년 전 에 경 제 학 적 관점에서 설명한 이론이 있다. 바 로 조지프 슘페터(Joseph A. Schum peter : 1883 ~ 1950)의 ‘창조적 파괴’ 이다. 오늘날은 바야흐로 창조적 파괴의 시대로접어들었다고볼수있다. 창조적 파괴란 기술혁신(技術革新) 에 의해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면서 낡 은 것은 계속 파괴되고, 끊임없이 경 제구조(經濟構造)가 발전해가는 산업 개편 과정을 뜻하는 경제학 이론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제27대 하버드 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 는 “21세기는 애덤 스미스도, 케인즈 도 아닌조지프슘페터의세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보편적으로 확산시킨 사람은 서머스 가 말한 조지프 슘페터다. 그는 20세 기 전반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자신의 경제학 이론의 핵심으로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가져오는 것은 기업가 정신 (Entrepreneurship)과 창조적 파괴 라고한다. 기업가 정신은 이윤 추구를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법과 새로운 상품개발 등의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의 정신 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창출되는 것을 창조적파괴로설명한다. 이 이론은 칼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참고하여 쓴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민 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Dem ocracy)를통해전파되기시작했다. 슘페터의 주된 관심사는 마르크스 이론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근본 원리 보다 경기변동의 원인을 찾는 데 있었 기 때문에 경기변동의 가장 큰 원인은 기술혁신(技術革新)이고,기술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진다고 설 명했다. 슘페터는『자본주의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은 기술혁신에 의해 기 존의 낡은 기술, 제품, 시장구조 등이 부단히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 면서 끊임없이 경제 구조를 혁명화하 는 변혁의 과정이며 이를 창조적 파괴 로설명한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 창조적 파 괴가중요한이유는무엇일까? 그것은 “우리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저성장(低成長)체제를 빠져나올 신성 장동력(新成長動力)이 절실히 필요” 하기때문이다. 시카고대학 거시경제학 교수인 로 버트 루카스는 기술진보(技術進步)는 경제내부에서자생적으로이뤄진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적극 투자하여 기술 혁신을 이루거나 학습 효과로 노동자들의 생산성이 향상되 거나 또는 외부 요인에 의하여 자신들 이 모르는 사이에 자본의 축적과 기술 향상을 가져와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이 끌어 신성장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는 슘페터가 주장한 것과 같이 혁신 (革新)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반 드시필요하다고생각된다. 이제는 창조적 파괴를 단행하는 기 업가 정신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 는 “초창의 인재”(Hyper Creator)들 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또한 그러 한 기업과 인재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토양이 절실하다. 이 시점에 서 자 문 할 수 밖 에 없 다 . 우리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창 의적 벤처기업들이 미국, 중국 못지않 게창업을할수있는여건을제공하고 있는가? 기존 기업들은 현재와 미래 에 대한 통찰을 확보하고, 명확한 비 전을 제시하여 초창의 인재들이 창의 성을펼칠수있는시스템을갖추고있 는가? 국가는 창의의 가치를 보장하 고 지식, 창의 산업을 보호할 시스템 을 가동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국가의 성장과 기업의 존망이 걸린 중대한 문제가 되 고있다고사료된다. AI와 4차 산업혁명시대인 지금의 변화 속도는엄청나다고 판단된다. 그 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 는듯하다. 그러나 오늘날만이 역사 속에서 급 격한 변화를 겪는 유일한 시대는 아니 다. 예를들어1차산업혁명이전사람 들은 마차를 타고, 옷을 지어 입고, 대 부분 1차 사업에 종사하며 살았을 텐 데, 갑자기 증기기관이 나타나 옷감을 만들고 커다란 기관차가 나타났다면 그들의 혼란은 어쩌면 지금의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을 수 있 다 . 최소한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미 접하고 있으며, 영화를 통해 인 간 상상을 구체화해오지 않았는가? 지금의우리와비교해봐도1차산업혁 명을 겪은 사람들은 정말 무에서 유를 보는 듯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 다. ※필자 연락처 :010-5274-9885,E- mail : dong-wonp@hanmail.net 인공지능(AI)과4차산업혁명시대에대처하는우리삶의자 세 -중- -오늘날은경제학자“슘페터”(JosephA.Schumpeter:1883~1 950)가 제창한 “창조적 파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지 금 우리나라에서 창조적 파괴가 중요시 되는 이유는 근간에 우리 경제 를지배하고있는저성장(低成長)체제를빠져나올신성장(新成長)동력 (動力)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인 바,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하여 기술혁신(技術革新)을 이루거나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勞 動生産性)이 향상되거나 우리 사회가 자본의 축적과 기술향상(技術向 上)을가져와사회전반의생산성증대(生産性增大)를가져올수있도록 노력해나가야- 븡신라오릉보존회(박씨대종친회) 수원시지부상임고문 븡종친회보븮라정븯발행인겸편집인 븡본보논설위원 근래 보도되는 내용으로 보면 국가 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의 하나는 청년 실업 문제입니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 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적어 실업(失業) 상태가 계속되 는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국가 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가 안 은 어려움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기업 이 활성화되고 경제가 활발히 돌아가 면 일자리가 적은 걱정은 없지만, 세 계적인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부족한 면도 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모든 업무가 자동화 시스템에 의하여 운영 되다 보면, 기본적으로 일자리는 적어 질수밖에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자리 없는 청년들은 어떻 게해야생활을유지해갈수있을까요.이 런 경우에는 옛 선현들이 대처했던 일자 리문제를생각해볼필요가있습니다.우 리 민족의 스승이자 대학자요 탁월한 경 세가이던 율곡 이이(1536~1584) 선생의 말씀을들어보겠습니다.“위가높은사람 이야 도(道)를 행하는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도를행할수없는경우야지위에 서물러나야한다.만약집안이가난하여 월급 받는 벼슬살이를 안 할 수없지만, 모름지기 내직은 사양하고 외직이라도 구하고,높은지위는사양하고낮은지위 라도 얻어 배고픔과 추위를 면해야 하느 니라(位高者 主於行道 道不可行則可以 退矣若家貧未免祿仕則須辭內就外辭尊 居卑 以免飢寒而已:『격몽요결』處世章)” 라고 말하여, 자신의 목표로 하는 직장, 높고 건사한 지위의 직장만을 원하지 말 고 우선 중앙이 아닌 시골의 직장이라도 찾아가고, 화려하고 건사한 직장만이 아 니라낮고별볼일없는직장에라도우선 취업하여 뒷일을 도모하라는 뜻으로 말 했습니다. 다산도 그런 유사한 이야기를 했습니 다. “가을이 깊으면 열매가 떨어지고, 물 이 흐르면 도랑이 이루어짐은 그 이치가 그러한것이다.여러생도들은반드시가 기쉬운지름길을찾아서갈것이요,가기 어려운 울퉁불퉁한 돌길이나 뒤얽힌 길 을 향하여 가지 말라(秋熟子落水到渠成 理所然也 諸生須求捷徑去 勿向 藤蔓中 去:「爲茶山諸生贈言」)”라고 말하여, 손 쉽게 얻을 직업이 있다면 사양하지 말고 바로취업을해야지,온갖고생과힘들게 애를써야만얻어질직업을구하다보면, 영원히직업을구하지못할수도있기때 문에, 지름길을 가야지, 울퉁불 퉁한 돌길이나 뒤얽힌 길은 향하지 말라 고권했습니다. 다산은 또 문장가가 되어 천하에 이름 을떨치고자하는젊은이에게,허황된꿈 은 버리고 우선 춥고 굶주리는 부모님을 봉양하는일부터먼저시작하고,그런중 에 독서를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대 문장가도될수있다면서,우선손에잡히 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권고를 했습니다. 생산직은 싫고, 사무직만 원하며 화려하 고건사한직장만을찾느라,어렵게지내 는 부모는 생각도 않는 구직생들에게 들 려주고싶었던,율곡과다산의말씀은이 제우리가 다시새겨보아야합니다.어떤 일자리라도 생계를 위해서는 우선 취업 하고,손에닿은일부터하라는것입니다. 사내취외(辭內就外), 사존거비(辭尊居 卑)의 여덟 글자를 의미 깊게 생각해보 면,그래도어려운일자리구하기가조금 은쉬워질까하는생각을해봅니다.근본 적인대책이야제조업의활성화,국가경 제의 정상화가 필수적이지만, 임시방편 으로야 율곡과 다산의 가르침도 따라볼 필요가있다는것입니다. 청년실업을어떻게할것인가 많은 사람이 갖고있는 고정관념 중의 하나가교육에관한것이다.학생들은어 리고 지식도 없으니 억지로라도 가르쳐 야한다는것이다.그러나지금의중학생 들은 70년대의 대학생들보다 더 많은 지 식과생각을갖고있다.뿐만아니라,90년 대 중반에 퍼스널 컴퓨터(PC)가 나오고, 2천년대에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인터넷 과 와이파이를 통한 지식축적은 가히 상 상할수도없을정도로커지고있다.여기 에 앞으로 수년 내 실용화될 양자컴퓨터 가 나오면 지식 뿐만아니라 실제 삶속의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하는 역량까지도 엄청나게갖게될것이다. 과거에는 학생들은 때려서라도 교육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러나 지 금은맞으면반감만커지고교육적효과는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감성의 시대,섬김 리더십의시대이다.국어영어수학등교과 공부가사고력을키우고지식을증진시키 지만, 지금은 초연결 초지능의 4차산업혁 명인공지능시대로진입하고있다.인공지 능(AI)이인간의역할을대체하는시대로 진입하고있는것이다.그러면인간은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인공지능과 경쟁되는 일 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인공지능을 이 길수가없기때문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말은 이제는 틀린 말이되고있다.교과서적인지식은스마 트폰만검색해도다갖출수가있기때문 이다.필요한 최소한도외에는더이상사 람 머릿속에 넣어 둘 필요가 없다. 문제 는, 어떻게 해야 급변하는 인공지능시대 에 시대흐름과 자기를 연계시켜 성공적 인삶과사회생활을할수있게만드느냐 가중요하다.이제는아는것만이힘이아 니다.알아내는것이힘이고,행동하는것 이힘인시대로진입하고있다. 4차산업혁명인공지능시대에사람이인 공지능과경쟁해서살아남기위해서는인 공지능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 경험과 체험이 중요하고, 실제로 해보는 시뮬레이션이 중요하다. 독서활동, 토론 활동, 리더십활동, 문화활동, 봉사활동, 진로체험활동, 청소년단체활동 등을 통 해 문제를 설계하고 해결하는 역량을 기 르는것이중요하다.필요한지식은그때 그때 스마트폰을 검색하여 활용하면 된 다.그래서교육도결과보다는과정을익 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정부에 서는이미15년전에초중고교에정보사회 에 필요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창체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이라는 비교과활동을 도입했고,대학에서는 수시입학제도를 도 입했으며, 상위권 대학들은 학종으로 학 생들을평가해선발하고있다. 두 번째 고정관념은 젊은이는 노인을 공경해야한다는것이다.세대간에역할 분담이 요구되는 보완관계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말이다.청년은 출산 육아에 힘쓰고, 중장년은 돈을 벌어 세금을 내 고 노년은 국가 에서 복지를 받으면서 어린 세대를 키우 는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노인들이 갖고 있는 심오한 지혜와 경륜을 어린 세대들 에게 전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가정이 많이 해체되고 공동체에서 배우 는 사회교육도 많이 없어졌기 때문에 시 니어들이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 으로 방법을 강구해서 어린세대들에 대 한다양한접촉과교육을시도해야한다. 플라톤은 지속가능한 사회가 유지되 기 위 해서 는 통치 자는 지혜 를, 수 호자 는 용기를, 시민은 절제를 가져야 한다 면서, 그렇게 되면 사회가 정의롭게 된 다고 하였다. 정의로운 사회란 각자에 게 할당된 것은 각자가 소유하되, 공동 이익 을 위 해 의무 가 요 구될 때는 의무 를 교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술 과 재 능을 사 회와 함 께 나 눌 때 사회 가 결속되고 그것이 정의이다. 자기 등불 을 남 에게 붙 여주 었다 해서 자기 등불 이작아지는것이아니기때문이다.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첫째는 고정 관념을 갖지 않고 사는 삶이고, 둘째는 선입 견을 갖지 않고 사는 삶이며,셋째는집착을 갖지않고사는삶이라고필자는생각한다.그 리고자기가사는공동체인사회를위하여무 엇인가를공헌하며사는것도중요하다. 시대가 급변하니 고정관념으로 보지 말자 박승주전여성가족부차관 1965년 초 상공부하학공업 1국장(오 원철)은 대통령 연두순시에서 “북한에 서는 비료·비닐론·석유 등 모든 화학 및 섬유제품을 석탄을 원료로 해서 생 산하고있습니다. 전기 를 많 이 쓰 고 생신 비가 많이 들 어 서 선진국에서는 이미 폐기된 공법이지 만, 우리나라에서 석유화학 공업이 완성 되면 경공업 분야에서는 단연 남한이 우 위 에 설 수 있습 니다 .” 라 고 보고 했다 . 이 보고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즉석 에서 “석유화학공업 기획단”을 구성해 준비 작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그 당시 가발이나 섬유 같은 경공업으로 근근이 먹고 살던 대한민국 땅에 중화 학공업이태동한순간이었다. 그 후 7년 뒤 1972년 국내 최초 울산 석유화학단지가 준공하면서 “한강의 기적”이본격적으로시작됐다. 박정희 정권 시절 1971년부터 79년까 지 8년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대통령 을 보좌했던 오원철은 2019년 5월 30일 91세 나이로 별세 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기틀을 만 든 “박 정 희 대 통 령의 경제 브레 인”이었다. 호주국립대 김 형아 교수는 2005 년에 펴낸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 책 에서 고인을 박정희·김정렴(비서실장) 과 함께 “삼두정치”를 통해 중화학공업 을추진한전문관료라고표현했다. 1970년 “오일쇼크”당시 중동에 진출 해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묘안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쟁이 터지고 유가가 치솟아 이제 막 중화학공업의 걸음마를 땐 대한민국 은치명상을입었다. 경상수지 적자가 급증하고 물가가 치 솟았다.공군 출신의 오원철 수석은 197 4년 1월 박정희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보고를했다. “중동은 작업환경이 아주 나쁜 곳이 어서 선진국 기술자는 돈을 아무리 많 이 줘도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제 대 장병이 수십 만 명이나 있습니다. 중동에서는 또 중 요 한게 공기(工期)단축인데,우리나라 가 선진국보다 기술력은 낮아도여기에 강점이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가 떨어진 이후 삼환기 업, 현대건설, 동아건설 등이 차례로 중 동에 진출했다. 그러자 한번도 외화를 구경도 못한 규모의 달러가 국내로 쏟 아져 들어왔다. 오원철은 “중화학공업 과 방위산업은 표리(表裏) 일체”라고 대통령을 설득해서 한국의 방위산업을 육성하는데도앞장섰다. 그 당시 “무기는 외국산을 써야 한 다.”고 저항하는 군인들에게는 “외국산 구매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내 방위산업 을키워야한다.”고호통을쳤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러 간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투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고인(오원철)은 황해도 출신으로 서 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군에서 제대한 후 한국최초 국산자동차인 시발 자동차에서 공장장으로 일했다.그러다 가 1961년 5·16군사혁명 직후 기술 인 재를 찾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국 가재건기획위원회 조사 과장으로 발탁 되면서처음공직에입문했다. 명석한 두뇌에 두둑한 배짱과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오원철을 박정희 대통령 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남달리 총 애했다.한번은 창원공업단지의 시찰을 마치고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오원철”이는 국보야. 오국보! 라고 칭찬한 일화는 유 명하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 막 숙원사업이던 행정수도 건설사업도 오원철기획단장이맡아서추진했다. 박대통령 서거 후 신군부가 들어서자 고인(故人)은 “구악(舊惡)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1980년 권력형 축재 혐 의로채포돼공직에서물러났고,이후1 2년간 대외 활동을 못하고 자택에서 칩 거생활을 했다. 이후 그는 박대통령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선진국 입구까지 끌어올린 자신의 경험 을후대에남기는일에매진했다. 1990년대후반부터“한국형경제건설” 이 라는 7권 분 량의 대작 을 썼다 . 2006년 에는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 강국 만들 었나” 라는 책을 냈다. 2009년엔 박전 대 통령 서거 30주년을 맞아 영문자 서전 “더코리아스토리”를출간하기도 했다. 박정희 시대를 향한 비판에 그는 평생 을 조 국 근 대화 에 몸 바쳤 다는 자 부심 으 로 맞섰다. 유신에 대해서는 “경제대국 건 설을 위 해 불 가피 한 선택 ” 이라 고 했 다. 또 5·16에 대해서는 “한국식 산업혁 명 의 출발 이자 10여 년 만 에 민 생고 를 해 결해혁명공약을완수했다고했다.” 노무현 정부의 첫 국방장관을 지낸 조영길(80)은 최근 저서 “자주국방의 길”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자주국 방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1979년 10·26 박정희대통령 서거에 대해 자주국방에 만 매달리던 사람들에겐 거친 풍랑을 해쳐가던 작은 배가 갑자기 선장을 잃 어버린 것과도 같았다며,“언제누가 다 시 그 희망의 불길을 피워 올릴 수 있을 것인가”라고애도했다. 그 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그렇게 죽기 살기로 핵개 발을 했는데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죽 는다는 것을 안다.”며 사실상 불가능한 것임을 시사했다. 또 그는 지난 30여 년 간 맹렬히 타오르던 자주국방의 불길이 꺼져가고 있다며, 이는 결코 외세의 간 섭이나 견제 때문이 아니라 문제는 우 리 안 에 있 는 것 이 라 고 했 다 . 조 전 장관(조영길)은 국가 지도력의 결핍, 군인의 본분과 가치관의 혼란으 로 군인들이 앞장서서 군대를 마구 줄 이고 군의 전력 구조를 해체하면서 그 것이 국방개혁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세 상에서 유일하게 이 나라에서만 일어나 고있는현상이라고했다. 한빛의메아리 박 희 학 븣숭덕전前참봉 (11)한강의기적일궈낸박정희대통령 뱚발뱞뱞행뱞뱞인:박순구 뱚취재편집:박상섭 뱚경영지원:박영일 기사제보븡광고신청븡구독안내 대표전화(053)588-7300 FAX(053)581-0067 뱚구독료년40,000 입금계좌:농협453013-55-000691 예금주:한빛신문 뱚뱜 42612 대구달서구달구벌대로1221(이곡동538-2)성창B/D5층 뱚뱜 본지는신문윤리강령및그실천요강을준수합니다 (2007년1월12일등록번호대구다-01225) 500만박씨성손의대변지 2007년1월24일창간(월간)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