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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12월31일 화요일 10 (제156호) 종합 1980년 묵호읍과 북평읍을 합쳐 동 해시로 승격되었으나 찾아오는 관광 객을 유치할 인프라가 없던 불모지에 호텔을 세워 관광객유치와 인력창출· 지역농산물 구매 등 향토기업으로 성 장한 뉴동해관광호텔이 지난 달 22일 호텔개관 30주년 및 창업주 박재두 회장의 회고록 ‘항골보리와 저녁연 기’발간기념식을가졌다. 호텔이 개관되던 1988년도만 해도 강릉 경포에 현대그룹이 운영하는 현 대호텔이 유일했고, 민간자본으로 호 텔을 짓는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할 때였다. 이후 개인 사업자가 신축한 호텔들이 기업들에게 인수되는 상황 이 비일비재했지만, 30년이 지난 지 금까지 창업자가 운영하는 경우는 뉴 동해관광호텔이 전무후무한 것으로 지역의자랑이기도하다 이날 행사에는 김진선 전 강원도지 사를 비롯 심규언 동해시장과 각급 기 관단체장등850여하객이참석연회장 1층과 2층을 가득 메워, 성황리에 개최 된 가운데 박재두 회장은 장학금으로 동해시 500만원, 동해향교 1천 만원을 기탁훈훈한미담을 낳았다. 창업주 박재두 회장은 이날 인사말 을 통해 관광호텔 불모지에 경험과 상식도 없이 오로지 의욕하나만으로 시작 오늘에 이르러 만감이 교체하고 감회가 새롭다며 창업당시를 회고하 고, 매일같이 노심초사하신 부모님에 게 오늘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얼마 나 좋을까 생각해보며 가슴 사무치도 록 보 고 싶 고 , 가 난 한 집 에 시 집 와 헌 신 해준 처(김옥화)와 막내동생(재 갑)을 비롯 가족들에게 고생 많았다 는 치하를 하고 싶다고 말해 평소 숭 조와 효를 실천해온 가장(家長)으로 써의소회를피력했다. 바다와 산, 계곡과 동굴의 아름다운 경 관을 함께 감 상할 수 있는 제 1의 관 광명소동해시에위치한뉴동해관광호 텔은 자기자본금 30% 은행융자 70%로 시작 성실한 경영으로 채무를 모두 갚 고 57명의 직원과 지역농산물 구매, 고 액납세 1위(14년) 등 견실한 향토기업 으로 성장,호텔은 찾은 관광객에게 세 심한 서비스와 더불어 편안하고 안락 한 경험을 제공한다. 각 객실에는 최신 첨 단시 설과 함께 통신 시설 등이 구 비 되어 있고 최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 과 커피숍 등을 갖추 고 있 어 고 객 들에게 추억을 만 들어 주는 삼성급 호텔로 승격(201 7)되었다. 미팅이나 이벤 트의 목적에 따 라 다양한 셋팅 의 연출이 가능 한 뉴동해관광호 텔 의 비 즈 니 스 룸, 연회장, 미팅룸과 채플홀은 동해 시의 최고의 이벤트 장소임을 자부하 고, 기업행사, 가족모임 출장뷔페와 같은 이벤트 뿐 아니라 소규모의 부띠 끄웨딩부터 대단위의 하객을 모시는 웨딩까지 뉴동해관광호텔은 호텔명성 에 맞는 경험과 노하우로 전문화된 연 회팀이 계획하는 행사를 더욱 훌륭하 게 만들어가고 있어 이날 기념식에서 심규언 시장은 조리부장 정성진 시설 차장 이갑열, 이철규 국회의원은 조리 부 김대웅 관리부 박미자,천세복 강원 도 관광협회장은 김대석,박진우 씨 등 직원에게 관광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 로를치하하며표창했다. 창업주 박재두 회장은 동해 천곡동 (항골마을)에서 17대에 걸쳐 오로지 농사에 의존하면서 살아왔다. 안되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감 동하여 언젠가는 나도 남들처럼 부자 소리 들을 수 있도록 이루어질 것이 라는 강한 신념과 자식들한테만은 가 난을 물려주지 않으려 열심히 살아와 지금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는 오직 성실과 신뢰로 살아 온 것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고’, ‘자수성 가’의표본이되었다. 지독한가난으로동네에서는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이 허다하였고, 보리밥 은 단골메뉴이기에 회고록 표제를 ‘항 골보리와저녁연기’로정한듯하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어난 박 회장 은 육군하사로 만기 전역 후 1970년 철도청에 입사, 1989년 퇴직하고 과 수원이었던 부지에 지금의 뉴 동해관 광호텔을 손수 짓고 관광업에 뛰어들 었다.2008년 불모지나다름없었던동 해시에 박씨종친회를 창립하여 탄탄 한 기반을 조성하였고, 2014년 강원 도본부 회장에 취임하여 많은 변화를 가져오며 활성화의 초석을 다지는 등 종친회에도많은기여를해왔다.이밖 에도 삼척 입향조 휴천공종회 회장을 맡아 재사(齋舍) 숙모재를 건립하고, 휴천공의 현손 정촌(鼎村, 16대조)공 종중의 회장을 맡아 어려운 여건에서 도 퇴락한 재사(齋舍) 봉사재(奉思 齋) 정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 새롭 게 일 신 하 였 다 . 그 리고 정 촌공 의 아들 셋 중 막 내 종 중인 천곡문중의 회장을 맡아 15대조 부터 11대조까지 실전된 묘소를 찾는 데 노 력하 였으 나 찾 지 못 해 김 제 삼 송 재 등 을 오 가며 자료 를 수 집 설 단을 세 우고 향화를 받들도록 하였으며, 48년 째 회장으로 종중을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10대조부의 묘역이 험지에 있음 에도 석물을 운반키 위해 도로를 개설 하여석물을세울때는‘뜻이있는곳에 길이 있다’는 진리를 신조로 삼고 5대 조까 지 모 두 석 물을 갖추 는 등 갖추 는 등 타 고난 숭조 심으 로 종 중사 에 큰 업 적을남기기도하였다. 1993년 동해향교 장의로 유림계에 발을 디딘 박 회장은 2002년 58세에 동해향교 전교를 맡아 동해지역 유림 발전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우리나 라 최연소 전교의 기록을 갖고 있으 며,성균관부관장을역임했다. 130여개에 달하는 각종 공로패와 감 사 패 그 리 고 각 급 기 관 장 의 표 창 장 과 2012년 제39회 관광의 날 수상한 대통령 표창은 그의 행적을 더듬어 볼수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예전에는 3년의 시묘를하는것이당연시되었다.그러 나 근세에 이르러 1년으로 또 6개월 그러다 지금은 3일 탈복을 하고 아님 어떤 이는 출상한 당일 탈복을 하는 사람들을볼수가있다. 그러나 박 회장은 1967년 아버지, 1 991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지 금까지 줄곧 시묘를 이어온 것이다. 부모님, 조부님, 증조부님, 고조부님 과 먼저 간 동생의 묘소가 있는 선영 에 매 일 아 침 봉 심 과 함 께 1 천 2 백 평 의 묘원을 돌아보며 잡초를 뽑고 지 난 날 의 일 과 와 이 날 있 을 일 을 고 (告 ) 하며살아생전과똑같이얘길나눈다. 이에 지난 해 대한민국의 ‘자랑스 런밀성인(숭조부문)’에 선정되어 수 상을받기도하였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전(前) 숭덕전 동준 전참봉(숭덕전보존회 이사장), 부산본부진국회장(前밀성박씨대종 회장), (사)신라시조왕숭모회 수태 이사장과 동열 사무총장, 서울본부 성율 사무처장, 강원본부 태근 회장 을 비롯한 동창고문과 용준 강릉시회 장, 병록 태백시 회장 등 많은 종친들 이참석축하와함께자리를빛냈다. /박성수명예기자(강원동해시지부) 뉴동해관광호텔개관30주년및박재두회장회고록출판기 념식 뉴동해관광호텔개관30주년기념식에서박재두회장과부인김옥화여사가내외빈의축하속에케익의불을끄고있다. 뉴동해관광호텔전경. 불모지에 경험과 상식도 없이 오로지 의욕하나만으로 시작, 인력창출·지역농산물 구매·조 세성실납부·장학금 기탁 등 향 토기업으로 자리 잡아 회고록 항골보리와 저녁연기, 박재두 회 장의 인생 역정이 가 감없이담겨져있다. ‘곰배령’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 고 있는가수조은성(본명 박순자)양 이 한국청소년신문사가 주관하고 대 한민국국회, 통일부,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대한민국청소년지도자대 상’ 시상식에서 예술부문(가요) 대상 을수상하는영예를안았다. 이번 시상식은 지난 14일 서울 백범 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개최되었으며, 한국청소년신문 창간 28주년을 맞아 모범청소년과 유공 지도자를 발굴하 여 시상하고 이들의 공적과 수범을 대국민 홍보를 통해‘바르고 밝은 사 회를 건설’하며, 청소년과 지도자가 어우러지는 한 마음 큰 마당인 대한 민국청소년대축제장이다. 조은성양은 밀성대군 후 청재공(휘 심문)의 21대손으로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2002년 데뷔하여 2012년 곰배 령/입술위에 꼭꼭 외 4곡을 발표하면 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한눈에 반해서’, ‘속도를 줄이거라’, ‘내사랑 군위’ 등을 발표하면서 고향 군위군 의위상을끌어올렸다. 이에 군위군에서는 2014년 군위둔 치 숲속 공원에 ‘내사랑군위’,‘팔공산 아’등의노래비를세워알리 고있다. 현재 KBS 전국노래자랑, 가요무 대, 6시내고향, MBC 가요베스트, 교 통방송 등 다수의 종편방송 등에 출 연하고 있다. 특히 노인요양시설 등 많은 복지센터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주변의칭찬이자자하다. /박광옥명예기자(대구광역시) 성손가수 조은성 가요대상 수상 한국 청소년신문사 주관 대한민 국국회 통일부 여성가족부 후원 조은성양이 지난 14일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가진 시상식에서 본보 박광옥기자의 축하를 받고있다. 양지(162.2×130.3㎝). 허름한고택 대문 앞에 소녀와백구의모습이보인다.한국적인정취 가느껴지는이작품은대상에대한애정이깊 이있는색감을통해잘드러나며섬세하고온 화한표현으로한국적서정성을느끼게한다. 금산박균갑선생이작품을설명하고있다. 평생 교직에 몸 담으면서 본인의 작품 활동을 뒤로 하고 오직 학생들 을 위 한 삶 을 살아 온 금 산 박 균갑 (錦 山 朴均甲) 선 생이 자신 의 그 림 세 계 를 오롯이 담은 회고집을 내고 발간기 념 작품 전을 지 난달 29일부 터 이달 5일 까지광주갤러리D에서가졌다. 일상 속에서작품의 주제를 찾는금 산 선생의 차분한 붓 터치와 안정적 인 구도로 주변의 삶을 소박하고 담 백하게 담아낸 작품에서 선생의 예술 인생을 내다보고, 고전적 사실주의에 기반 한 풍경화와 정물화가 주를 이 루는 그의 작품들은 특히 남도의 산 과 바다, 들과 강을 섬세하고 정감 있 게 보 여 주 고 있 다 . 특 히 어 릴 때 뛰 어 놀던 고향과 부모님을 소재로 한 작 품에서는 부모님 살아생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었고, 이를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전해 그 내면에 선생의지극한효심을엿볼수있다. 금산 선생은 시조왕의 65세이고,천 문지리에 밝아 임란을 예언하고 난을 극복하는데 공헌한 임란공신 백우당 박상의 선생의 13세로 1940년 전남 장성군 황룡면 수연산자락 관동리에 서 아 버 지 휘 만 용 (晩 容 )공 과 어 머 니 최장순(崔長順) 여사와의 사이에 장 남으로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에서 가문을 지키려면 장남만큼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아버 지의 뜻과 어릴 적 그림그리기를 좋 아했던 것을 지켜본 외당숙의 권유로 사범대학 미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중등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 다. 교사로 재직하면서 혹 아이들의 학업에 지장을 줄 것을 우려하여 본 인의 작품 활동을 뒤로하고 오직 아 이들 교육에 전념했다. 2003년 전남 영광 군남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했으며황조근정훈장을받았다. 전남매일 미술대상전(1976), 묵우 회전(1979), 전남도전(1981,1982) 등 에서 입선하였으며, 한국방송통신대 학미전(1984)에서는 특선을 수상했 다. 전남교원미술전, 무등산사랑전, 광주사생회 회원전, 6대광역시 합동 교류전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며 팔순을 앞둔 나이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이어가고있다. 성산 위무량 선생(전 중등학교 교 장)은 축간사를 통해“내가지켜본금 산 은 후 학 을 가 르 치 는 길 을 걸 어 오 면 서 오직 가르친다는 화법(畵法)을 보 이고자한 교육적인 목적 외에는 대외 적으로 자기의 화풍(畵風)을 내 보이 고자한욕심이없어청출어람(靑出於 藍)을 기대하며 가르치고, 자녀교육 에 힘써온 수기치인(修己治人)이었 다.”고 하였으며, 노강 박래호 선생은 “부모님의 생활을 화폭에 담은 사부 화(思父畵)를 보는 자녀들은 그 아버 지를닮아간듯 그자체였다.”며지근 거리에서 지켜본 금산(錦山) 현종을 소개했으며, 전시회동안에는 돈재공 종중의많은종원들이찾아축하했다. 한편 금산 선생은 퇴직 후 종사에 헌신 많은 공적을 남겼으며, 밀성박 씨 돈재공파 회장(도유사)와 하남회 회장등을역임했다. 금산 박균갑 현종 회고집 출판기념 및 작품전 열어 11월29일~12월5일까지 일상생 활에서 주 제를 찾 는 작가 의 소박한 품성과 가족에 대한 따뜻 한 정 엿보 여 금산박균갑현종회고집출판기념작품전이지난달29일열린가운데내외빈들이개막을알리는테이프컷팅을하고있다. 가을밭갈이-어려운형편에농사일을하면서도항상의연했던아버지를기억하기 위해화폭에 담은사부화(思父畵)로금산현종의효성을엿볼수있다. 금산박균갑 지난 10일 실시된 완도군산립조합 비상임 감사 선거에서 완도군종친회 일용 이사(사진)가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의영예를안았다. 이번 선거는 전(前) 조합장출마자 와 현직감사 2명 등이 입후보해 박빙 을 예상하였으나 대의원들의 표심은 박일용 후보자에게 몰려 당당히 1위 로 당선, 선택해준 조합원들에게 감 사드린다며 임업인의 권익향상에 노 력할 것이라며 소 감을피력했다. 1948년노화읍입 도조 종갓집 장손 으로 태어나 노화 향토중학교를어렵 게 마쳤다. 이후 생 활전선에뛰어들었고,월남전참전군인 으로국가의명령에따라죽음을무릅쓰 고치열한전쟁터에서목숨을걸고전투 에임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1974년 최연소 이장과 염대리 어촌계장, 새마을 지 도자로 주민들의 절대적인 신임 속에 지역발전에 이바지하였고, 완도군종 친회 노화읍 이사로 각종행사에 빠짐 없이 참석하는 등 종친사업이라면 앞 장서 솔선수범하고 있어 종친들로부 터도신망이두텁다. 완도군 노화읍에서 건재상을 경영 하고 있는 박일용 당선자는 완도군번 영회 이사, 번영회 특임위원, 대한민 국 재향군인회노화회장, 참전전우회 장, 노화보길 향토중학교 총동문회장 을 역임했으며 만학도로써 목포 제일 정보고등학교 졸업하고 현재 세한대 학교 휴먼서비스융합학부(경영학) 1 학년에재학중이다. 완도군종친회박일용이사완도군산림조합비상임감사피 선 임업인 권익향상 노력할 터 종사(宗事)에도 솔선수범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