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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志士(애국지사) 강문호(康文昊) 獨立抗爭記(독립항쟁기) 강문호 지사는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1899년 3월 9일 康利錫(강이석) 모 金孝貞(김효정)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동년 3월 5일 군산 만세시위 때 체포된 영명학교(永明學校) 교사 학생 30여명이 재판정으로 들어서자 당시 영명학교 4학년인 그는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과 학우들이 묶여 들어오는 광경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자 많은 방청객들은 이에 호으하여 재판장은 별안간 만세장으로 변하였다. 그는 결국 체포되어 동년 고등법원에서 소위 법정 소란 및 보안법위반 혐의로 6월을 선고하자 "남의 나라를 빼앗은 강도들이 빼앗긴 제나라를 찾겠다는 사람에게 죄를 준다는게 뭐냐"고 계속 불복하여 반항하자 징역 6월을 1년 6월로 높여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교회목사로서 민족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항상 일본경찰 헌병의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어 수시로 가택수색을 당하였고 일제의 창씨개명을 끝까지 반대하는 등 계속적인 항일운동을 전개시켰으며 해방후에는 목사로 봉직하시다가 1986년 7월 12일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묘소위치: 기독교 공동묘지 內 50m / 1996년 12월 24일 제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