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page


24page

6.25 전후의 학생활동 건국운동 과정에서 자율적으로 나타난 도내 학생단체의 수는 대청(대한청년단) 민애청(민족애국청년단) 족청(조선민족청년단) 학련(전국학생총맹제주도연맹) 등 10여개였다. 이 가운데 6.25 전까지 비정규 군사교육을 실시한 단체는 1947년 8월 발족한 학련이었고 학교 학생단체의 규합과 대동단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를 주도한 학생은 김호산(위원장, 제38회) 신두완(부위원장, 제41회) 허동옥(제36회) 홍인표(제37회) 양신아(제38회) 송봉규 고병진 정규홍 한춘택 장창훈(이상 제39회) 고남화 홍문표 김흥수 오태림(이상 제40회) 김호종 문산율 강용택(이상 제41회) 서성옥(제42회) 등이었다. 제주도이재(罹災)고학생구제회는 학련간부 송봉규 강정흠 김창주 등을 중심으로 함병선 계엄사령관의 지원을 받아 한라료(漢拏寮)를 운영하면서 숙식을 제공하고 면학을 권장한 자원봉사 조직이었다. 이들의 도움으로 고난을 이겨낸 학생 중에는 임봉원(교장 제39회) 현인덕(교장 제39회) 양필순(교수 제41회) 김홍수(대령 제41회) 강군황(언론인 제41회) 현창영(교사 제41회) 이기빈(국회의원 제42회) 등이 있다. 1948년 4.3사건 전후로 학내외 소요가 끊이질 않자 제주도경비사령부는 진압작전의 하나로 우익학생들을 중심으로 제1기 학도군사훈련(1949.1.22.~2.21.)을 실시하였고, 5월 10일부터 개교 39주년 기념 선무활동으로 '육탄6용사' 도일주 수회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학련은 1949년 말 해산되어 그 법통을 학도호국대에 승계했다. 학도호국대(상위조직은 학도호국단)는 1949년 1월 23일 이미 발족하여 학생과 교직원으로 구성(대원)되었고 학교장은 대장을 겸직하고 대대장은 학교장이 임명하여 학생들을 장악하고 있었다. 1950년 5월 2일 송봉규를 비롯한 제39회 간부들이 졸업하자 고남화가 대지휘관 겸 학도호국대 대대장으로 임명받고 학도호국대를 재편성했다. 학도호국단은 1985년 폐지되고 학생회가 탄생하였다. 이에 앞서 1950년 2월 청년방위대 간부후보생 4기 공개모집에 선발된 재학생들은 3월 1일 충남 온양의 육군방위사관학교(육군예비사관학교 후신)에 입교, 1개월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수료하여 245명이 3월 31일 육군예비역 소위로 임관하였다. 훈련 중 대장, 중대장 등 간부들은 모두 제주출신 후보생들이 차지하면서 이 훈련과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