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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중문리 신사터(현 천주교 중문성당) 중문리 집단 학살 터 중 가장 참혹한 학살극이 벌여진 곳은 중문리 '신사터'이다. '신사터'는 일제강점기에 신사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 중문천주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중문리 주민 34명을 비롯하여, 강정리 주민 6명, 대포리 주민 1명, 도순리 주민 2명, 상예리 주민 2명, 상천리 주민 5명, 색달리 주민 17명, 하예리 주민 2명, 하원리 주민 1명, 회수리 주민 1명 등 총 71명이 희생되었다. 특히 12월 17일 중문리 주민 20여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80대 노인에서부터 2살 난 아기에 이르기까지 무참히 희생됐는데, 일가족이 함께 집단 총살되는 비극이 많았다. 마을별 희생자수 : 총 71명 중문리 35명, 색달리 17명, 강정리 6명, 상천리 5명, 도순리 2명, 상예리 2명, 하예리 2명, 대포리 1명, 하원리 1명, 1. 중문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집단 총살당한 중문리 주민은 전부 34명이다. 1948년 11월 12일 이유도 모른 채 2명이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고, 동년 12월 5일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토벌대(경찰, 9연대)에 의해 8명이 희생되었다. 동년 12월 17일 도피자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20명이 토벌대(경찰, 9연대)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후 동년 12월 22일 1명, 12월 24일 1명, 1949년 1월 5일 1명, 1949년 1월 8일1명이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당해 토벌대(경찰)에 의해 희생되었다. 2. 강정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강정리 주민은 전부 6명이다. 1948년 12월 10일 임수연의 일가족, 처와 며느리, 손자, 손녀 등 5명은 아들 임경욱이 무장대 관련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병출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경찰)에 의해 집단 총살당했다. 3. 대포리 - 희생자 임선은 아들 전재평의 행방을 모른다하여 도피자 가족으로 오인 받고, 1948년 12월 15일 중문리 '신사터'에서 토벌대에 의해 총살당했다. 4. 도순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도순리 주민은 2명이다. 희생자 이평연은 1948년 11월 25일 토벌대에 연행된 후 희생되었고, 한봉옥은 12월 1일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5. 상예리 - 희생자 강시인은 무장대와 관련 있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18일, 희생자 김경 1949년 1월 5일 도피자라는 이유로 중문리 '신사터'에서 응원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6. 상천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상천리 주민 5명은 일가족이다. 부친 정태옥이 1948년 12월 15일 군인에 의해 연행된 후 총살당한 후, 처 백유생과 딸 3명은 동년 12월 18일 연설이 있으니 모이라고 하여 중문지서에 모였다가 남편 정태옥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항의하자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했다. 7. 색달리 -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색달리 주민은 전부 17명이다. 1948년 10월 11일 희생자 변상찬은 도피생활을 하다가 순경에게 발각되어 연행된 후 총살 당했으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행방불명되었다. 동년 11월 11일 희생자 김정수는 무장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중문지서에 연행된 후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동년 12월 5일 고두회 외 1명은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총살당했고, 동년 12월 16일 최기열의 일가족 아들과 딸 등 6명은 남편 송희창이 입산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어 12월 17일 강유생 외 6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총살당했다. 8. 하예리 - 1948년 12월 10일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고 부부 2명이 중문리 '신사터'에서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9. 하원리 - 희생자 김규남은 도피생활 하던 중, 1948년 12월 13일 토벌대에 발각되어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