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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넓궤 4.3 유적지 / 큰넓궤 / 소재지: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 90번지 일대 '큰넓궤'는 제주 4.3 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했던 곳이다.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시행된 이후 주민들이 야산으로 흩어져 숨어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험한 대신 넓었고, 사람들이 숨어 살기에 좋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린아이나 노인들은 이 굴속에서 살았다. 청년들은 주변 야산이나 근처의 작은 굴에 숨어 토벌대의 갑작스런 습격에 대비하여 망을 보거나 식량이나 물 등을 나르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이 굴속에서 산 지 40여 일 후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고 말았다. 토벌대가 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이불솜 등에 불을 붙여 매운 연기가 밖으로 나가도록 열심히 부쳤다. 토벌대는 굴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총만 난사하다가 철수했다. 토벌대가 간 후 주민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다. 그 후 이들은 한라산 영실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생포된 후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 큰넓궤 동쪽 50m 지점에 '도엣궤'가 있는데 이곳에도 항아리 파편 등 당시 생활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인근에 제주 4.3 당시 없어져 버린 마을 '삼밭구석'이 있으며, 당시 학살된 후 시신을 찾지 못해 옷가지 등만을 묻은 '헛묘'도 있다. 밥은 큰넓궤에서 하지 않았어요. 근처에 작은 굴들이 많았는데 주로 거기서 며칠에 한 번씩 해서 밥을 차롱에 담았다 먹었어요. 또 물은 삼밭구석의 소 먹이는 물을 항아리로 길어다 먹었어요. 밖에 다닐 때는 발자국이 나지 않게 돌만 딛고 다니거나, 마른 고사리를 꺾어다가 발 디뎠던 곳에 꽂아 발각되지 않게 했죠. 똥도 밖에 나가서 누지 못했어요. 굴 한쪽을 변소로 정해서 거기다가 변을 보도록 했지요. 하동 사람들은 아랫굴에 살았고, 상동 사람들은 주로 윗굴에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상동 사람들은 변소가 있는 굴까지 가기 힘들어 항아리에 쌌다가 나중에 한꺼번에 버리곤 했지요. - 동광리 신원숙씨 증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