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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11월30일 토요일 7 (제155호) 관향조 종친회 한편 이날 개관식은 박준승 선생의 장 손 녀 선 숙 , 손 자 기 수 현 종 등 후 손 을 비 롯해 유진섭 시장과 시 관계자, 광주지 방보훈청 하우성 청장, 김원웅 광복회 장,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열렸다. 유진섭 시장은 “기념관 개관으로 애 국충절의 고장인 정읍의 위상을 높임은 물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 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다할 것으로 기 대한다”고말했다. 박준승 선생의 장손녀 선숙 현종은 이 날 유족대표인사에서 시 관계자를 비롯 기념관 개관에 함께해준모든 분에게 감 사의인사를전했다. 박준승(朴準承, 1865. 11. 24∼1927. 3. 24)선생은 1865년 전라북도 임실군 청 웅면 옥석리 아랫배치에서 아버지 호진 공(公)과 어머니 면천복 여사와의 사이 에셋째아들로출생하였다. 선생의 호는 자암(?菴)으로 15세인 1 880년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 감나무골 삼요정에서 김영원 선생으로부터 한학 을 수학하면서 농업에 종사하던 선생은 20대에 이르러 현실문제에 눈뜨기 시작 하였다. 이후 1912년 장성대교구장 겸 전라도 순유위원장으로 임명돼 교정직 수행을위해정읍시산외면정량리안계 마을로이주했다. 3.1일 만세삼창 후 일본 경찰에 검거 된 후 법정에서 일본인 판사가 “피고는 조 선 독 립 이 될 줄 믿 고 있 는 가 ” 라 고 묻 자, 선생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거침없이 대답하였고, “피고는 금후에 도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라고 묻자, “금후 기회만 있으면 하겠다”고 답변함 으로써 불요불굴(不搖不屈)의 독립정 신을 드러냈다. 징역 2년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옥고를치렀고,출감이후에 도 선생은 천도교 최고예우인 종법사 (宗法師)에 추대되는 등 교역자로 활동 하 면 서 법 정 에 서 밝 힌 대 로 재 차 독 립 운 동의 기회를 모색하다가 1927년 3월 24 일 전북 정읍군 산외면 정량리 안계마을 자택에서 염원하던 조국 광복을 보지 못 한 채 영면하여 북면 마정리 먹방산에 안장됐으며 1963년 현재의 수성동 성황 산중턱에이장됐다. 이날 제막식에는 정읍시종친회 종원 100여명이 참석 기념식 수를 하여 주변 인들로부터 찬사가 이어졌다.( ▶관련기 사 3 면 ) /자료제공박기섭 정읍시청년회장(광주일보 전북취재본부장) 뱚▶1면박준승기념관기사에서이어짐 박준승 선생의 장손녀 선숙 현종이 동상앞에서 잠시포즈를취하고함께해준종친분들에게감 사의인사를전했다. 음성박씨대종회(회장 용준)는 지난 달 27일(음9.29) 오전 11시 충북 음성읍 삼생리 선영에 모셔진 관향조 박서장군 을 비롯한 아들 재(梓, 공부상서), 손자 현계(玄桂,평해부사),증손 문길(文吉, 門下侍郞) 등 4대(代) 시향을 봉행했 다. 음성박씨는 귀주성 전투의 영웅 박서 장군을 관향조로 하고, 고려 충숙왕 때 전리총랑(典理摠郞), 평해부사(平海府 使) 등을 역임하였고, 1327년(충숙왕1 4 ) 정 승 (政 丞 ) 윤 석 ( 尹 碩 )과 함 께 조 적 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2등 공신에 책록 된 손 자 현 계 ( 玄 桂 )의 아 들 문 서 (文 瑞 ) , 문길(文吉), 문환(文桓) 등 3형제에 이 르러 장남 문서의 차자(次子) 원(洹)은 조선 때 첨의정승(僉議政丞)을 역임하 여 정승공파(政丞公派)로 광주 전남지 역에, 차남 문길이 장남 순(淳)은 조선 초 마지막 함흥차사의 주인공으로 판중 추부사에 증직되고 시호는 충민(忠愍) 으로 충민공파(忠愍公派)로 음성과 의 왕시 등, 순(淳)의 아우 정(淨)은 조선 태종 때 세자빈객, 예문관 직제학, 예조 판서를거쳐좌찬성에이르렀으며,시호 는 문익(文翼)으로 문익공파(文翼公 派) 경기 화성시 등에 집성촌을 이루며 각각분파되었다. 박서장군은 1231년(고종18년) 몽고 의 침입에서 천하무적 몽고 기병의 영예 를 여지없이 깨뜨린 전투가 있었으니, 바로박서장군이지킨귀주성전투였다. 그러나 왕명을 어길 수 없는 신하의 도 리 를 지 켜 순 응 하 고 성 을 열 어 항 복 하 고는 분연히 벼슬을버리고 음성으로 낙 향하였다. 이후 귀주성 을 굳게 지켜 몽 고군을 격퇴한 철혈용장(鐵血勇壯) 박 서 장군은 문하시랑평장사에 제수되고 충정공(忠靖公)의 시호와 함께 음성백 (陰城伯)에 봉해졌으며, 충절(忠節)과 무공을 기리고자 조선 숙종30년(1704) 예조판서 민진후(閔鎭厚)의 주청(奏 請)으로 평안북도 귀주에 정공사가 세 워졌고이듬해사액(賜額)되었다. /자료제공박근태(음성박씨청계종중회장) 음성박씨대종회관조충정공박서장군시향 봉행 아들븡손자3代각각봉행 음성박씨관향조박서장군의시향이 지난달 27일삼생리묘원에서봉행된가운데중근초헌관의헌 작에이어독축하고있다. 이날 아헌관은태근종승공종중고문, 종헌관은평현문익공종중회장이 맡아헌작했다. 밀양박씨 규정공 후 요산공(휘 운달) 의 손 자 백 헌 공 이 하 4 8 위 시 향 이 지 난 1 0일 압량읍 추모제단에서 봉행되었으 며, 같은 날 진량읍 속초리 소재 경사재 와 숭조당에서 요산공의 아들 송재공의 사남 송고공(松皐公, 휘 苞)과 죽와공 (竹窩公, 휘 繼得)과 후손 190位의 제향 이각각봉행하였다. 경사재에 위패가 봉안된 송고공(松皐 公,휘 苞)과 죽와공(竹窩公,휘 繼得)은 학행(學行)으로명성이드높다. 숭조당(崇祖堂)은 2006년 석천공을 비롯한 선조 묘역이 있던 경산시 진량읍 신제리 일대가 진량 제2차지방공단부지 로 개발 편입되어 기존 분묘를 부득이 이장하여야 하게 된 차에 분묘설치에 의 한 자연훼손을 막고 후세에 물려줄 금수 강산을 보전하며 정부에서 추진하는 다 양한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마련되었다. 전국 경향각지의 우수 납골당, 재실, 숭 조관련건축물,조형물등을현지답사하 고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구해 대지 593 .00㎡(180평) 건물 96.66㎡(30평)에 정 면4칸 측면3칸 전통식한옥으로 256실의 안치실을 갖춘 숭조당을 2007년 4월 착 공하여 같은 해 11월 17일 준공하여 현 재 190여 位의 위패와 유골이 안치되었 다. 한편 경사재와 숭조당 제관은 다음과 같다.(초/아/종헌/집례/축관順) △경사재 병우/순휘/병용/재균/병목 △숭조당 병목/석창/남균/재균/창균. - 이상- /박방무명예기자(경북 경산시지부) 경산요산공后백헌공,숭조당시향봉 행 190여위위패봉안으로장례문화개선등후손친목의장되어 백헌공이하 48위의제향광경. 숭조당제향후참례한종원들이함께하고있다. 고려 말 충신(忠臣)으로 팔은(八隱) 의 한사람인 송은 박익선생을 비롯한 아 들 우당공(휘 융), 인당공(휘 소), 손자 감헌공(휘 진)의 추향이 지난 28일(음1 0.1) 오후3시 보본재에서 엄숙 봉행 되 었다. 이날 제향은 지난해 총회에서 제례 간 소화를 의결한 후 처음으로 묘소가 아닌 보본재 재실 정당에서 3대 4위의 제상 (祭床)을 차리고 용건(鏞建) 집례의 창 홀에 따라 영계(永契), 해봉(海鳳), 종 식(宗植) 순으로 헌작하고 순원(順元) 축관의독축으로이어졌다. 송은 선생은 휘는 익(翊)이며 초명은 천익(天翊)이고 자는 태시(太始)며 호 는 송은(松隱)으로 은산부원군 영균(銀 山府院君 永均)의 장자이다.1332년 (충 숙왕 복위 1년)에 밀양 삽포에서 태어났 다.1360년 (고려 공민왕 9년)29세의 약 관으로 입지잠(立志箴,뜻을 세우는 글) 을 지어 학문의 뜻을 세웠고, 또한 지신 잠(持身箴)을 지어 수신지도(修身之 道)를 깨우쳐 학문의 근본을 세웠다. 고 려 공민왕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문 학(翰林文學)을 시작으로 소감(少監) 을 지내고 1386년 (고려 우왕12년)에 동 경판관(東京判官)과 예부시랑 (禮部侍 郎)을 역임하였으나 공양왕대에 곧 관 직을 그만두고 밀양으로 낙향하였다.낙 향해 있던 선생은 정몽주의 권유로 공양 왕 말년에 다시 상경하여 잠시 예조판서 를 역임하였으나 이성계 세력이 정몽주 를 살해하고 조선왕조를 개창함으로써 절의(節義)을 지키며 이성계가 공조(工 曹), 형조(刑曹), 예조(禮曺), 이조판서 (吏曹判書)와 좌의정(左議政)을 제수 하며 다섯 차례나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 았다.지난 2000년 9월 경남 밀양시 고법 리 소 재 송 은 선 생 고 분 에 서 벽 화 가 발 견되어 화재를 모았다. 그 후 선생의 유 택은 2005년 2월 5일 국가 문화재 사적 제459호로 지정되었다. 한편 제향 직전 개최된 총회에서는 감사 및 결산보고를 원안대로 처리하고 △고려대전 운영비 부담금 미납처리 건은 고려대전의 운영 상태를 살펴본 후 납부여부를 결정키로 하고 △관리사 옥상 태양관전기 발전시 설의건은집행부에위임키로했다. 불사이군이충절을지킨송은박익선생추모제향 봉행 보본재제관, 왼쪽부터영광회장,영계초헌관, 해봉아헌관, 종식종헌관, 용건집례, 순원축관, 창 재직전회장. 송은선생제사븮보본재븯 독축광경,순원축관이 독축하고있다. 아당공파 대종회는 지난 달 31일 진주 시 금산면 속사리 물언재 옆에 모셔진 단소에서 아당공(휘 조)을 비롯한 6대 (代)9위(位)의제례를봉행했다. 송은 선생의 셋째 아들로 포은 정몽주 선생으로부터 성리학을 수학하여 깊이 연구하여 학문이 두드러진 아당공(휘 조)을 비롯한 6대(代) 9위(位)의 추향 제례가 지난 달 31일(음10.4.)진주시 금 산면속사리물언재에서봉행되었다. 아당공의 휘는 조(調)이다. 조선 초기 에 진사에 오르고 그 뒤 효행으로 추천 되어예조정랑(禮曺正郞)을지냈다. 아당선생은 평소에 명예나 이익에는 뜻이 없었던 선비로 벼슬을 그만두고 물 러나 산수 자연속에서 숨어 지냈다. 오 늘 날 그 시 문 (詩 文 ) 을 보 면 바 른 학 문 과 엄격한 처신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문 이 전하는 것이 20여편 도 되지 않아 그 아름다운 말씀과 훌륭한 행실이 세상에 많이 남아 전하지 못해 애석한 일이다. 선생은 경남 산청 신계서원에 배향되어 있다. 한편 제향후 가진 총회에서는 감사보 고 및 수입지출 결산 등이 원안대로 처 리되고 임원개선은 전원 유임되었다.해 원 회장은 임기동안 내실 있는 운영과 선조 현창사업에 매진했다.물언재 팜플 렛과 세계도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투철 한 숭조심 와 애종심 그리 고 부지런한 처세가 유임 을 결정짓게 했다는 후문 이다. 이에 수삭인사를 통해 2 년 후에는 능력있고 젊은 분을 회장으로 모시겠다 고 말하고 벌초와 제향에 자진하여 함께 할 수 있 도 록 해달라고 당부하고 물 언재를 방문하고 돌아갈 때 전기 차단기를 내리지 말 것을 덧붙 였다. 밀성박씨 아당공파대종회 정총 및 시향 봉 행 해원회장을비롯한임원유임븣다음집행부는젊고능력있는분을모시도록노력 아당공파대종회는지난 달 31일진주시금산면속사리물언재옆에모셔진단소에서아당공(휘조) 을비롯한 6대(代)9위(位)의제례를봉행했다. 물언재 제관, 왼쪽부터 초헌관 명호, 아헌관 종식, 종헌관 해 판,축관 동길,집례해원회장順 밀성박씨 졸 당공파 대종회 (회장 종도)는 지난 달 31일 경 남 합천군 용주 면 봉기리 봉양 재에서 정기총 회를 개최하고 1989년 발행(己 巳譜)이후 30년 만에 족보편찬 을 결의하고 편 집위원회를 구 성 , 마 지 막 이 될지 모르는 족 보를 자손만대 에물려줄가보로만들것을다짐했다. 종도 회장은 그동안 수차에 걸쳐 족 보편찬이 거론되었고,최근에는 지난여 름 임원회의에서 가결한바 있으나 이번 총회에서 추인을 받고자 한다고 말하고 심사숙고하여 결정하여 줄 것을 당부했 다. 이에 참석 종원들은 족보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참석 종원 만장일치로 이를 추 인했다. 이에 따라 종도 회장을 위원장 으로하고 6지파에서 각1명씩 부위원장 을 맡고 소속지파에서 수단유사를 선정 조만간에 편찬위원회 회의를 통해 세부 사항을점검토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졸당공 묘역 정비 건, 선조제례 합사의 건을 상정 묘역정 비의 건은 집행부에 위임하고 선조제례 합사의건은시간을두고의견을취합하 여내년총회에서의결토록했다. 봉양재는 오전 졸당공 제례 후 졸당 선생의 아들 형제(승문,희문)의 후손들 이 장소를 옮겨 장남인 휘승문(承文,가 선대부동중추부사)의 묘역 아래의 봉산 재와 차남 휘 희문(熙文, 태인현감)의 재사 산천재로 각각이동 제향을 올리면 서 분산된다. 그러나 합사할 경우 참례 한 종원이 배가 될 것이고 시간과 경비 가단축된다는것이다. 한편 이날 총회 후에는 개좌를 열어 다음날 봉행되는 졸당공 추향 제관을 분 정하여제향에만전을기했다. 졸당선생의 휘는 총(聰)이고, 졸당은 아호이다.밀양 삽포리에서 송은 선생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형들(우당,인당,아 당)과 함께 포은 정몽주 선생에게 수학 했다. 효행으로 천거되어 호조정랑으로 이조참판에증직되었다. 권귀(權貴)를 탄핵하다가 유배되어 돌아와서는 세사(世事)에 뜻이 없어 산 수간(山水間)에 노닐다가 만년에 가수 (嘉樹,아름다운 나무)고을 대평리 송지 촌(현 합천군 대병면 성리1구)에 이거 하였다. 삼산(허굴산,악견산,금성산)이 수려 하고 동부(洞府, 신선이 사는 곳)가 평 평하게 퍼져 아늑하여 자손에게 전할 만 한 곳이라 하여 졸당선생의 두 아들(승 문, 희문)과 그 후손들의 집성촌이 되었 다. 졸당공파대종회추향및定總성료 봉양재븣족보편찬위구성 조선시대관리들의표상이된졸당공(휘총)시향이지난1일봉행된가운데제관들이함께하고있다. 오른쪽부터동원축관,형제아헌관,해원종헌관,인제초헌관(종손)종도회장,태교 집례,종식감사. 인제 종손이 초헌관으로 헌작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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