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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연 숲길에서 - 양성우 오늘 하루 모처럼 세상의 소리에 뒤 귀를 막고 두타연 깊은 골짜기에 들어와 숲길을 거닐다 긴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유리알 같고 사람의 손길을 안 탄 산꽃잎들이 싱그럽다 누가 새들만 날아서 남과 북을 오간다고 말하는가 금강산 가는 옛 길목 하야교 삼거리에서는 윗녘 물줄기와 아랫녘 물줄기가 소리치며 흘러와 하나로 합쳐지느니 혹시나 하여 조심히 딛는 발자국 소리에도 어디에선가 흙무더기 솟구치며 터여조를 것만 같은 검푸른 산빛 속에 촘촘히 묻힌 지뢰밭, 그 속에서 이끼 묻은 쪽동백 고로쇠 물박달 돌배나무들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머루 다래 칡넝쿨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니 이미 시간을 뛰어넘어 산비처럼 숲을 적시고 가슴을 적시는 남모를 슬픔이여 여기 와서 내 안에 이는 새삼스런 바램이 있다면, 피어린 저 산등성이들 깎아지른 벼랑 위에 겹으로 두른 철조망을 다 거두어서 구부려 만든 붉고 노란 큰 꽃송이들을 살아서 이 눈으로 역력히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