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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東뿔) . 만와(廳歐) 공(公)의 생애(生灌) 4 동고(東皇) 박윤현(朴j읍L玄) 선생은 1696년(숙종 22) 달구벌 남산리(현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서 태어났다. 휘(듬훌)는 윤현(J~L玄) , 호(號)는 동고(東뿔)이다. 어려서부 터 영명하고 준수하여 재주와 능력 이 있었으며 처음부터 중부(↑中父) 술재공 몽징(述顆 豪徵)을 따라서 학 문파 예능을 매워 일찍이 성취하였 고, 또한 글씨를 잘 써서 사람들이 동고 만와공 묘역 - 경북 정도군 풍각먼 승마산 다투어 그 글씨를 보배로 여겼다. 비록 관직을 맡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얻 고 잃음에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일찍이 서울을 오가면서 어울린 사람들 대부분이 당시의 이름난 고관이요 임금 곁의 실세였으나 오로지 조상 위하는 일로써 서로 의지하고 도왔을 뿐이고 무슨 딴 뭇을 가지고서 윗사람들을 일부러 만나진 않았다. 그 힘을 다한바는 오로지 조상의 유업을 계승하고 종친을 돈목시킴에 있었으니 일찍이 원근 의 친족을이끌어서 세덕사를짓고시조를비롯한그이하의 여러 현인을제사지냈다. 그리고 족보를 간행하지 않음을 한으로 여겨서 친족들과 의논하고 힘을 다하여 1741년 밀 성대군의 후손을 모두 실은 최초의 대통보 신유(辛西) 보(讀)를 발간하였다 이 두가지 일은수백년 동안해낼 겨를이 없었으나실로공의 힘에 기반하여 해낸 것이다. 그리고 선생은 서당을 세워서 선비들과 벗들을 불러 모으고 가르치고 배우는 모범을 크게 펼쳐서 한 지방에 오롯한 기풍을 일으킴으로써 션조를 계승하고 후대를 복되게 하는 일이길 기대하였다. 그 뜻한바가 아주 부지런하고 진지하였기에 결국 그 의지를 지켜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1750년(영조 26) 영변하니 선생의 높은 돗을 추모하지 않은 이 없었다. A 만와 박윤광(~免없 朴j쓸L7t) 선생은 1698년(숙종24)년에 태어났으며 휘는 윤광(볍L光) 字 자술(子述) 만와(뼈뼈)는 호 (號)이다. 통덕랑(通德郞)이고 글을 읽으며 의롭게 알았음으로 해서 그 형인 동고 선생과 더불 어 같은시기에 같이 이름이 드러났으니 그형과아우를구분하기 어렵다고들했다. 두 살터울인 형제를 보면 재주 그 기상 그 높은 뜻은 같이 말달리면서 서로 나란히 맞추 어 달리듯 했으리라 어려서부터 책상을 맞대어 같이 공부했으며 다투어 매진하고 같이 정 •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