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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皐(동고)선생의 휘는 윤현이요 晩臥(만와)선생의 휘는 윤광이며 선고 휘 성징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와 선비 정부인 광산이씨의 삼남과 4남으로 경북 청도 달구벌 남산에서 숙종22년(1696년)과 24년(1698년)에 밀성대군 휘 침의 27세손으로 태어났다. 밀성부원군 언부는 중조요 충정동 향산 휘 세균은 파조이며 호조참의로 충효인의를 친행한 국담공 휘 수춘의 현손이다. 형제는 밀성인으로 대군지후 밀성박씨연계대보가 없어 각 문중에서 가첩에 의해 혈통늬 미미한 행적이 전해오는 것을 한탄해오다 신유년(1741년)에 선생 형제의 주창으로 족 세붕 치문 필정등과 합심하여 전국 각 문중에 산재해 있던 족보를 수집하여 대소가를 소목으로 정리 배열하여 밀성박씨 12중조 세계분파지도를 완성하고 12중조파를 구분하여 밀성박씨 연계대보 전30권을 발간하여 각파에 소장하게 하니 어 얼마나 훌륭한 업적인가 이 보첩을 기준으로 각파에서 파보도 간행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양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중희 향산 파종회장께서 대종회에 몇 차례 수비해 줄 것을 건의해 왔으나 대종회에서는 결론을 얻지 못하고 수차에 걸쳐 논의한 끝에 2019년 3월 12중조파 회장단회의 및 이사회에서 밀성재 경내에 수비하는 것을 결의하고 양선생 공적에 보답코져 하였다. 또한 양선생은 영조 27년 신미에 경채 10만냥을 차입하여 시조왕의 숭성비를 건립하는데 만와선생이 수소인으로 왕의 허락을 받았으며 시조왕의 위판에 王字가 없이 신라시조라고만 된 것을 안타까워해 만와 선생 외 220여명이 상소하여 王字를 쓰도록 윤허받아 신라시조왕이라 위판을 쓰게 된 공로가 매우 크다. 특히 선생께서는 밀성박씨는 동방대성으로 密城華胄(밀성화주) 始林靈源(시림령원) 忠孝之家(충효지가) 道義之門(도의지문) 千派一本(천파일본) 萬枝同根(만지동근) 世守敦睦(세수돈목) 永垂後昆(영수후곤)이라는 교훈도 남기셨다. 신라기원 2076년(20119년) 계추 밀성(밀양)박씨 대종회 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