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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울산 출신 노동운동가 # ○ 김천해(金天海 : 1898~?, 본명 김학의) : 방어진 출신인 김천해는 동국대학교 전신인 조계종 중앙학림을 졸업했다. 1920년 성세빈(成世斌 : 1893~1938)과 함께 일산리에 노동야학을 설치하고 동면청년회를 결성했다. 노동야학은 보성학교로 발전한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간 김천해는 1920년대 후반 재일본조선노동총연맹 중앙집행위원장과 조선공산당 일본총국 책임비서를 지냈다. 1928년 체포된 뒤 1935년 석방됐다가 1937년 다시 구속돼 1945년 해방될 때까지 감옥살이를 했다. 석방 뒤 조총련의 전신인 재일조선인연맹 의장을 지내다 한국전쟁 중인 1950년에 북한으로 갔다. ○ 이관술(李觀述 : 1902~1950) : 범서 임압 출신 이관술은 1929년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덕여고보에 지리, 역사교사로 부임했다. 1930년 경성여학생만세운동에 참가한 제자들을 지지하면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33년 항일 노동운동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로 경성트로이카에 참가, 두 차례 구속된다. 변장의 달인이라 불렸으며 일제경찰 감시를 피해 전국을 돌면서 노동자를 조직하다 해방을 맞는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정부장 겸 총무부장을 맡았다. 당시 한 정치여론조사에서 이관술을 여운형, 이승만, 김구, 박헌영에 이어 가장 양심적이고 뛰어난 정치지도자 5인에 선정됐다. 1946년 조선정판사위폐 조작사건으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이후 재판절차도 없이 7월 3일 대전 동구 산내면 골령골에서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