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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10월31일 목요일 2 (제154호) 기 획 옛날 말에 한 번 배신은 어렵지만 여러 번 배반은 쉽다고 했 던가. 주군 경애왕을 배신하고 견훤에게 붙었던 그는, 견훤을 배신하고 왕건에게 붙었다가, 마침내는 신라를 버리고 망국의 군왕을자청했다. 그는 일상사로 배신했고 이권을 챙겼다.그러기에 충과 의를 내세운 태자와는 처음에도, 나중에도 양립할 수 없었다. 이런 맥락에서 김부에게 있어 아들은 큰 걸림돌이었다.견훤과의 협 잡을 통해 경애왕을 죽일 수는 있었으나, 아들마저 죽일 수는 없었다.자신은 귀부의 대가로 호사를 누렸으면서도 아들 때문 에 신라 백성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기도 했다. 아들보다 못한 아비로낙인찍힌삶을그는감내해야만했다. 의리의 관점에서만 보면 그는 워낙 실패한 인생을 살았고, 그러기에 오히려 가엾게 여겨질 정도이다. 권력을 추구하면서 도 마음 한켠 느꼈을 도덕적 자책감을 그는 일생 동안 먹고 살 았을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도, 오지 않을 듯 여겨졌던 최후의 순간이마침내눈앞에다가왔다. 978년 4월, 밖에는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세상을 징치(懲治)하려는 듯 거대한 분노를 담은 굉음과 함께 비를 퍼 부었다. 사선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빗살은 급기야 아래로부터 솟는듯광란했다. 이제 방금 초록으로 물든 나무는 내리쏟는 빗살에 온몸의 잎 사귀를 털어냈다.마구 떨리는 잎사귀의 움직임이 좋다는 것인 지, 싫다는 것인지, 괴롭다는 것인지 아니면 흥겹다는 것인지 가늠하기어려웠다. 집안 연못에는 봄비가 가득했다.빗물이 연못 수면에 파문을 만들었다.겹쳐진 파문이 조밀하게 이어지자 이윽고 널따란 호 수는 진흙 빛 벌판이 되어 끓어오르는 듯 했다. 호수는 자신을 괴롭힌 비를 향해 온몸을 들어 거대한 분노를 표하였다. 그것 은 마치 왕건의 군사를 향해, 김부의 매국 행렬을 향해,거병했 던오천(吾川)사람의분노처럼여겨졌다. 시자(侍者)들이 장지(葬地)를 어디로 택할지 물었다. 이승 에만 골몰했던 그였기에 미처 저승의 일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송장이 다 된 김부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말라 터진 입부리가 순간 씰룩였다. 그러나 말은 나오진 않았다. 그 의눈은저승점이주위에끼어저승의빛을닮아있었다. 검버섯의 털이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켰다. 한참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라를 판 데다, 오천 吾川 사람의 피살마저 방 관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무색했다. 왕도 사람들이 김부의 주검을결코반길리없었다. 신라의 왕이었으나 살아서 신라 왕도를 떠난 그는, 이제 죽 어서조차 영원히 서라벌 왕도를 밟고 잠들 수 없게 되어 버렸 다. 자신이 초래한 거친 운명의 장난 앞에서 김부는 태어나 처 음으로진실이담긴눈물을흘렸다. 희미한 시선 사이로 자신을 비난하며 총총히 멀어진 태자의 모습이, 귓가에는 천지를 흔들던 통곡이 들리는 듯 했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걸어왔던 김부는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렸 다. 모든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고 마의를 입고 떠난 태자 와,백성과,사직과 의(義)를 위한 것은 거의 없었다.잠깐의 영 화에 눈이 멀어 영원한 충(忠)과 의(義)와, 임금의 자리를 잃 어 버렸다. 이제 이것을 발견하여 사세를 돌이키고 싶었으나, 그러기엔때가너무늦어있었다. 어차피 인간지사 일장춘몽이런가. 모든 파국을 이끈 김부는 마침내 입에 거품을 물고 죽었다. 신라왕의 자리를 벗어버린 그는,고려왕의장인으로죽었다. 그는 항상 힘의 이동을 정확히 읽었었고 힘센 자에게 의탁하 는 것을 생존의 지표로 삼았었다. 그러한 나머지 역적 견훤과 결탁해 왕이 되었다. 그러더니 왕의 자리는 물론 나라마저 또 다른 역적 왕건에게 넘겼다. 그 매국의 덕에 김부는 이승의 호 사와영화를맘껏누렸다.또고려왕실의주류로진입했다. 이런 맥락에서 견훤에 의한 김부의 즉위는, 오래지 않아 신 라 왕조의 멸망을 드러낼 상징적 사건이었다. 신라를 위해 노 심초사한 경애왕은 김부의 세력권에서 애매한 죽음을 당했다. 이어 왕의 자리를, 개인이 가질 권력으로 혼동한 김부가 즉위 하며신라는실상그명운을다하였다. 군왕의 재질이 아닌 자가 즉위했을 때의 폐단을 고스란히 드 러낸 채, 천년 사직은 멸망했다. 그것은 신라의 비극이고 역사 의 비극이었으며 종국에는 매국의 멍에를 써야 할 김부, 그 자 신의비극이기도했다. 김부의 후손은 고려의 왕실세력으로 뿌리를 뻗어갔다. 역사 는 김씨 중심으로 기록됐다.무너지는 왕실을 떠맡아 경애왕이 기울였던갖은노력은온당한역사의평가를받지못했다. 경순왕이 태조에게 귀순한 것은 비록 부득이한 일이기는 하지만 또한 가상한 일이었다.그 당시에만약목숨을걸고태조의군사와싸워서,힘이 다하고 형세가 곤궁하여졌다면, 필히 그의 일족은 멸망하고, 무고한 백성 들에게도해가미쳤을것이다. 그러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나라의 창고를 봉하고, 군현을 기록하여 태조에게 귀의하였으니, 그가 고려에 세운 공로와 백성들에게 입힌 은덕 이 매우크다할것이다. 옛날 전씨가오와월의국토를송나라에바친것을 두고, 소자첨은 그를 충신이라고 하였으니, 지금 신라의 공덕은 그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것이다. 우리 태조는 비빈이 많았고, 그의 자손들 역시 번 창하였는데도, 현종은 신라의 외손으로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그를 계 승한 자들이 모두그의자손이었으니, 어찌위와같은음덕의보답이 아니 겠는가.(븮삼국사기븯권12신라본기12경순왕9년조사론) 하여 이 대목에서 진실이 진실대로 기록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 진면목이 제대로 전해지고 해석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게된다.언필칭역사란승자의붓대에서나오기때문이다. 978년 4월 경종은 김부의 주검에 귀순을 뜻하는 순(順)을 넣 어 경순(敬順)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9년간 견훤의 지배를 받 은 괴뢰정부의 수반, 50년간 고려의 신하로 지낸 자는 주검이 되어만장을앞세우고처량하게송악을떠나동쪽으로향했다. 정승(政丞) 김부(金傅)가 사망하니 시호(諡號)를 경순(敬順)이라 하였 다. (븮고려사븯권2세가2경종3년4월조) 3년 송 대평흥국 3년 요 보령 10년 여름 4월에 정승(政丞) 김부(金傅)가 졸하였다. 경순(敬順)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븮고려사절요븯 권2 경종 헌화 대왕景宗獻和大王3년4월조) 경애왕이 죽은 지 51년 만이었고, 견훤이 죽은 지 42년 만이 었고, 왕건이 죽은 지 35년 만이었다. 또 나라를 왕건에게 넘긴 지 43년 만이었다. 상보로 임명된 지 3년만이었다. 길고 질긴 이승의 삶을 접고 만장을 앞세운 채 그는 속절없이 저승에의 길을떠났다. 60리를 이동하던 행렬은 신라 왕도로 이어지지 않고 장단부 남쪽 8리쯤에서 멈췄다.거기로부터 서라벌 왕도까지는 대략 8 00리, 촉도지난(蜀道之難)이 징험되는 순간이었다. 신라 왕도 에서그처럼떨어진왕릉은없었다. 고(故)신라의경순왕을순릉【(順陵)지금의장단부(長湍府)남쪽8리에 있다】에장사지냈다.(븮동사강목븯6상경종3년4월조)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이 고려 양식으로 세워졌다. 능 주위로는 고려 왕릉의 예에 준 해 병풍처럼 곡장(曲墻)을 둘렀다.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는 신 라와는거리가먼존재였다. 경애왕과 관련한 필자의 연재는 이제 다음호(35회, 2019년 1 1월)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예정이다. 다음 회(최종회)에서는 총평과전체마무리를염두에두고있다. 돌이켜보건대, 연재 기간으로는 대략 3년에 달한다. 더러 그 간 발표한 학술 논문을 옮겨 싣기도 했고, 팩션을 위해 준비한 초고를 옮겨 놓기도 했다.때로는 가독성을 높이고자 난이도를 낮추었고 각주를 생략하기도 했다.주요 사료이지만 더러 생략 한경우도많았다. 필자가 오랜 시간 거추장스러움, 번거롭고 수고로움을 마다 하고 지면에서 피력하고 싶었던 얘기는 경애왕의 억울한 죽음, 그이면의설움을신원할노력의절실함이었다. 모든 것은 사라짐으로써 덧없나니,신라 부흥을 향한 경애왕 의 노력은 봄날의 꿈처럼 흩어졌다. 이제 그 모든 기억을 되살 려 복원하고, 자손 대대로 계승할 역사적 사명은 현재 역사의 또다른자락에선우리의몫이다. 천년 동안 압살된 역사의 흔적을 생생히 되살릴 역사적 책무 가우리에겐있다. ‘범죄자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후삼국 시대 의 격랑 속에서왕건,견훤,김부 등은 자신들의 잇속에 따라사 단을 벌였다.경애왕을 지원하고 협조한 정상적 동조자는 적어 도 당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인한 무리 속에서 경애왕은 고 독한단독자였다. 신라를 묵묵히 지켜내려는 경애왕은 굴절된 역사의 행간에 서 약소국의 설움을 안고 패배자로, 술꾼으로, 무능력자로 매 도당했다.생전에도 무한한 고통과 번민과 불면의 시간을 보내 었던 경애왕은 사후에도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고 간 혼군이라 는깊고진한주홍글씨를씻어내지못했다. 경애왕은 어김없는 역사의 희생양이었고, 역사적 패배자였 다.김부식 등 권력의 사주를 받은 어용 사가들의 붓에 의해 그 강고한 틀은 천년의 세월을 건너 띄어 더욱 강해졌고, 확실하 게자리매김했다. 주어진 글의 답습과 맹목적 암기만을 능사로 여기던 조선의 문사들은 이면에 담긴 당사의 사정을 찾아낼 엄두나 시도조차 하려 하지 않았다. 또 그러한 책임에서 박씨 일문도 결코 자유 롭지않음이자명하다. 필자는 고통 받고 질시당하며 역사 속에서,사실과는 다르게 사람들 속에서 어긋나게 회자되는 억울한 이들의 핍진한 복원 에 관심을 지녀왔다. 시대를 종횡으로 가로질러, 가려지고 감 춰졌던역사적사실의재조명에부심해왔다. 당나라를 끌어들여 민족의 영토를 축소시킨 주범으로 손가 락질 받던, 그리하여 아무도 관심을 쉬 기울이지 않던 김춘추 를 역사 속에서 재조명하기도 했고,베트남에서 고려로 왔으나 역사의 기억에서 망각된 이용상의 궤적을 쫓기도 했다.김춘추 를 다룬 KBS 한국사전(김춘추의 지독한 복수, 백제를 멸하리 라), KBS 역사스페셜(대왕의 꿈, 김춘추), KBS 대왕의 꿈 등 은 하나같이 필자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구현, 서술된 것이었 다. 현재 경북 봉화 베트남 타운 역시 필자가 찾아낸 역사적 근 거와 노력에 힘입은 소산이다. 안동 MBC의 ‘오래된 기억’, 베 트남 대사의 봉화, 영주 방문 등은 필자의 노력에 입각한 결과 물들이다(박순교, 븮선조 흔적 찾아 온 베트남 대사븯, 봉화 일보 특집 2018 ,1,8 및박순교, 븮한국ㆍ 베트남, 봉화군통해하나로븯, 봉화일보특집기사, 2 018,4,9). 봉화 베트남 타운의 역사적 화두를 발굴하여 세상의 수면 위 로 끌어 올리는 데에 7년의 세월이 걸렸다.역사의 행간에서 명 멸한 화산이씨의 시조 이용상의 진면목은 필자의 손에 의해 되 살려졌으며, 향후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가교 역할을 오랜 기 간수행할것이다. 경애왕과 필자의 인연은 이보다 더욱 거슬러 올라간다.2007 년 박씨 전 대종회장님의 각별한 당부로 경애왕 개시는 촉발된 것이었으니, 그간 흘러간 세월은 결코 만만치 않다. 이제 세월 의 무익함을 걷어내고,하나하나 저작물로 발표하여 세상의 빛 을 보게 해야 할 결실의 순간에 이르렀다. 필자는 경애왕의 죽 음에 서린 결정적인 탐구 사항 몇몇을 더 보태어 가시적인 성 과물로도출하려한다. ■사업개요 ▶위치:경북봉화군봉성면창평리충효당일원 ▶사업기간 :2019~2023(5년간) ▶사업비:420억원(국비) ▶사업내용:베트남역사공원,베트남길,베트남마을조성 ▶시행처:문화체육관광부 ▶주요시설:리황조역사관,귃호민요관,베트남전통가옥, 뱚뱚뱚뱚뱚뱚체험·교육시설,베트남거리등 삼가 고하건대, 박씨 일문에게도 진부한 제례의 반복, 거행 만이 아니라 미래를 지향하는 임팩트 있는 서사, 법고창신의 정신이 필요하다. 문화의 전승과 종문의 역사적 계승을 위해 호소력있는서사의발견과창조가요망된다. 10명의 신라왕에 대한 흡인력 있는 신라왕조실록의 발간이 야말로, 박혁거세를 둘러싼 역사적 사단 등을 일거에 잠재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경애왕의 신원은 그 단초가 될 것임을 믿 어의심치않는다. 필자가 손은 댄 주제, 인물들은 빠짐없이 책자로 출간되었 다. 또 세간의 반향을 일으켰다. 경애왕에 대한 노력 역시 이제 빛을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종중의 힘은 숫자로 대표될 수없다.오직행동과실천으로서만얘기될뿐이다.’ 숱한 이들의 질시 속에 고적함만 감돌던 경애왕 역시 필자의 오랜 연구를 거쳐 왔다. 마치 광야에서 복음을 외치고 전하던 세례 요한처럼 필자는 필자가 소화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과 정성을다하였다. 남은 과제는 경애왕의 죽음에 관련한 나머지 미진한 부분과, 포석정에 얽힌 결정적 요소를 풀고 엮어 천하 만민이 읽고 깨 칠 수 있게끔 책자의 출판의 절실하다. 이른바 화룡점정을 위 한종중의결단과결의를요청한다. 허허로운 역사의 갈피를 뚫고 터지는 경애왕의 소리 없는 아 우성에귀기울여야한다는소회를새삼밝힌다. 경애왕(신라55대왕.재위924~9 27) 뱚역사비정(34) 뱛Ⅰ.배신의굴레 박 순 교 이광수의 소설 븮마의태자븯 표지. 출전:박종인의땅의역사<조선닷컴라이프> 뱛Ⅱ.신라인이아닌고려인 뱛Ⅲ.매국과사필(史筆) 뱛Ⅳ.왕도(王都)밖의신라왕 김부의무덤. 김부의무덤위치.(구글지도) 뱛Ⅴ. 필자의변 필자가쓴김춘추관련도서. 필자가쓴이용상관련도서및기타. 경북 봉화군베트남타운건설사업구상도(경북 봉화군제공) ▶다음호에계속뱚 목 차 Ⅰ.배신의굴레 Ⅱ.신라인이아닌고려인 Ⅲ.매국과사필(史筆) Ⅳ.왕도(王都)밖의신라왕 Ⅴ.필자의변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