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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리차드 위트컴(Richard Whitcomb) 장군은 1894년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나 ROTC 장교로 임관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특히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45년 마닐라 상륙작전에서 적시의 군수지원으로 전쟁의 승리를 주도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장군으로 진급했다. 이후 53년 부산의 미군 제2군수사령관으로 부임해 장기간의 전쟁에 사용된 막대한 탄약을 재보급하고 장비를 정비해, 유엔군의 화력을 완벽하게 보장하고 동시에 후방지역의 치안유지와 전쟁포로 및 피난민 관리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53년 11월 27일 부산역 대화재로 부산시민 29명이 숨지고 3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당시 부산에 주둔하던 미국 제2군수사령부 사령관인 위트컴 장군은 지체없이 군수물자를 풀어 이재민을 위한 천막을 짓고 식량과 의복을 제공했다.이 일로 위트컴 장군은 미국 의회 청문회에 소환되기도 했는데, 그는 청문회에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국민을 위한 것이 진정한 승리이다”라고 역설해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오히려 더 많은 원조지원 약속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고 이재민을 위해 영도와 양정동에 400세대 규모의 이재민 주택을 건립했다.위트컴 장군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밴플리트 장군과 비영리 비정부기관인 한미재단을 설립해, 한국의 재건을 위한 다양한 지원활동을 펼쳤다. 또 전쟁으로 발생한 전쟁고아들을 걱정해 재단을 통해 수많은 보육원과 고아원을 지원했다.출처 : 한국보훈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