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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8월31일 토요일 9 (제152호) 종합 蘆江 朴 來 鎬 ▲全南長城出生 ▲본보자문위원 ▲長城筆巖書院선비학당학장 ▲성균관부관장 見 兄 被 楚 (견형피초) 형이회초리맞는것을보았다는뜻. 본 四字成語는 강재 박기현선생의 문 집 부록에 기재된 국포 박장현(菊圃 朴 章鉉)님의 행장(行狀)에서 인용한 것인 데 그 내용은 이렇다. 님께서는 효행으 로 추천되어 통훈대부 사헌부감찰을 받 았는데 타고난 자품은 진실하였고 재주 와성품은근면하고민첩하였다. 어려서부터 효도하고 공손하여 종형 과 함께 마을 글방에서 공부를 할 때 그 형이 스승에게 회초리를맞는 것을 보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님에게 우는 연 유를 들은 즉 그 형이 회초리를 맞은 것 을알았다는것이다. 필자는 계속된 전라남도 향교,전교협 의회의 계획에 따라 7월26일 14시부터 선비체험, 인성교육이 영암향교 유림회 관에서 시작되었는데 영암을 비롯나주, 함평, 무안, 지도 등 4개 향교 유림원로 들이 참석하였고 기본 강의를 마친 뒤 특별히 언급한 것은 백제 때 이 고장 출 신 왕 인 박 사 가 천 자 문 을 비 롯 논 어 등 등을 가지고 일본에 가서 도덕 문화를 가르쳐주었건만 최근 경제보복을 자행 하고 있는 아베(安倍)정권의 배은망덕 을규탄하자고하였다. 이달 3일 같은 시간에는 화순향교 명 륜당에서 강의를 하였는데 화순을 비롯 동복,능주,남평,보성 등 6개 향교 원로 유림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모였다.사회 자로부터 강사 소개를 받은 필자는 옛날 동복 곰실에서 7년 동안 제자를 양성하 는 값진 시기가 있었기에 오늘은 나를 장성이 아닌 동복 유림 박래호로 소개했 으면 좋겠다고 하자 동복 유림들은 감사 의박수를보냈다. 이 장소에서 필자는 충과 효가 특별하 다는 것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 중 종 때 정암 조광조 선생은 사림을 중심 으로 하는 정치를 주장하다가 이 곳 능 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사약을 받고 마지막 세상을 하직하며 사세시(辭世 詩)에 이렇게 남겼다.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하였고,나라 걱정하기 를 가정을 걱정하듯 하였네, 이 땅에 떠 오른 저 태양이여, 나의 일편단심 분명 히 비춰 주리라.(愛君如愛父 憂國如憂 家 白日臨下土 昭昭照丹衷)하였으니 이 시에서 정암 선생의 충성심을 짐작하고 도남음이있다고하겠다는것이다. 선조 대왕 임진왜란 때 진주 촉석루 삼장사 가운데 한분인 최경회 장군이 바 로 화순에서 배출된 장군이다. 장군은 경상도 의병청에서 구원요청이 있자 호 남 의병청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상도도 우리국토라며 내가 가겠다.하고 김천일 고종후 등과 진주 촉석루에 입성하여 승 패를 거듭하다가 결국 진주성이 무너지 게 되자 장군은 촉석루에서 김천일 고종 후와 함께 서사시(誓死詩)를 짓고 남강 에 몸 을 던 졌 다 . 그 시의 내용은 이렇다. 촉석루 가운 데 우리 세 장사들은 술 한잔 마시고 웃 으면서 긴 남강을 손짓했네, 긴 남강 물 도도히 흐르니, 파도는 마르지 않을 것 이고 우리 혼백도 죽지 않으리(矗石樓 中三壯士 一盃笑指長江水 長江之水流 滔滔 波不渴兮魂不死)효를 언급하자면 곰실 마을 창녕조씨 한 가문에서 다섯 효자가 배출되었기에 곰실 마을이 한양 까지도 알려졌다는 것이다. 라고 밝혔 다. 13일 14시에는 강진 유림회관에서 마지막 강연회를 가졌는데 강진을 비롯 해 남 , 장 흥 , 진 도 , 완 도 등 5 개 향 교 유 림 지도자들이모였다. 기본주제인선비체험에있어서는증자 와 그 제자 공명선의 사실을 설명해주었 으며 우리 고장 출신 정채균 군수가 부임 강진을 유림의 고을로 발전시켰다는 과정 을 설명해주었다. 정조대왕께서 정 다산 의 형제들을 보호해주려고 형 약전이 천 주교를 믿은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다산 은 답변에서 신하가 임금을 속이겠습니 까?신하는임금을속이지않을것이며아 우가 형의 신앙을 증명하겠습니까? 아우 는 형의 신앙을 증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臣可欺君乎 臣不可欺君 弟可證兄乎 弟 不可證兄)라고 하여 형 약전을 비롯 다산 까지강진으로귀양살이를하게되었으며 다산께서는 다산 초당에서 목민심서를 비 롯5백여책을서술하게되었다. 정 군수는 다산 초당을 새롭게 손질을 하였는가 하면 다산의 행적을 밝힌 큼직 한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한말 유학 자 강재 박기현선생의 도학정신을 선양 하기위해 용전사를 세우고 그 편액 글씨 까지 썼다는 사실을 향교 담 아래 세운 공적비가 그업적을 밝히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필자 역시 최재남 전교를 비롯 강진 유림들께 용전사를 위한 적극적인 협조 를 당부하기도 하였으며, 앞에서 밝힌 국포님께서 남긴 정신과 향기는 지금도 이 어 져 그 증 손 병 현 군 은 국 포 공 의 삶 에 욕이 될까봐 그 발자취을 조심조심 밟아 가고 있다는 것도 밝혔다. 이번 순 회교육을 마무리 하면서 진도 향교 전교 이자 본회 사무처장을 겸직하고 있는 박 재문 종친님께서 보여준 애종의 마음에 감사를밝혀둔다. ■蘆江 先生의 漢字 이야기 박 종 부 변비란 대장연동 운동의 저하로원 활한 배변 운동을 하지 못하는 질환 으로 배변이 1주일에 2회 미만이거 나, 배변 시 굳은 변을 보며 통증이나 출혈이 동반되는 경우라면 변비로 진 단됩니다. 보통 어린이의 경우에는 성장함에 따라 장의 운동이 변화하며, 3~4세가 되어야 성인처럼 1~2일에 1~2회 배변 을 볼 수 있 습 니 다 . 1 세 미 만 의 영 아 는 연령에 따른 생리적 특성과 분유, 이 유 식 , 모 유 등 에 따 라 하 루 0 ∼9 회 다 양한 배변 습관을 보입니다. 보통 하 루에 한 번 이상 대변을 봐야 하지만, 2 ~ 3 일 에 한 번 보 더 라 도 대 변 이 굳 지 않고편하게본다면변비가아닙니다. [원인]소아 만성변비는 주로 이유 식 이 후 또 는 배 변 습 관 을 익 히 는 시 기부터 시작되어 심리적 또는 신체적 으로 배변에 장애를 느끼는 기능성 배변 장애가 주로 많습니다. 즉, 기질 적으로 선천성 거대 결장, 선천성 갑 상선 기능 저하증 등의 원인으로 인 한 변비 발생은 5~10%정도에 불과하 며, 대부분 불규칙한 배변 습관이 원 인입니다. 변이 직장 안에 머물러 있 게 되면 직장벽이 변을 감지하고 변 의를 느끼도록 배변 반사가 이루어집 니다. 그러나 변의를 무시하고 넘겨 버리게 되면 직장벽의 지각이 둔화되 어 변의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정 상인에서 대변의 무게는 하루 35~225 g으로 식사를 충분하게 못하거나, 물 을 충분히 마시지 않거나, 배변습관 이 불규칙하거나,나이,운동 부족,환 경의 변화 등에 의해 변비가 생길 수 있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다이어 트, 임신, 월경, 스트레스 등이 주 원 인으로알려져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수의 환자에서는 변비 를 유발할 만한 원인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이를특발성변비라고합니다. 이런 경우 대장의 전반적인 운동성이 떨어져서 생기는 대장 무력증이나 자 극성 하제를 많이 복용하는 경우에 생 기 며 , 변 이 대 장 은 잘 통 과 하 나 항 문 밖으로 변이 배출되지 못해서 생 기기도 하고, 변의 통로인 대장이 좁 아지거나 막히는 대장암, 대장용종, 게실증, 궤양성 대장염에 의한 장관 협착, 선천성 거대 결장증, 신경계 질 환, 근육질환, 갑상선 기능저하증, 당 뇨병으로 인해 생기기도 합니다.[증 상]배변 시 과도한 힘이 들어가거나 변이 과도하게 단단한 경우, 배변 후 에도 변이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복 부팽만감, 복통 등이 변비의 주증상 입니다. 하복부의 불쾌감과 항문출혈 이 반복되면 이차적으로 치질, 치열 등이 발생하여 배변 시 항문의 통증 이나출혈이나타나기도합니다.만성 변비는 식욕부진과 소화불량이 생기 고, 이는 또한 변비를 악화시키는 악 순환으로 이어지며,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합니다.(질병백과참조) 종부파동원리로 볼 때 변비는 하행 결장 S결장 직장 곧 항문과 가까이 위치한 대장의 오작동에 의한 긴장으 로 발생합니다. 그러면 왜 대장의 긴 장이 발생할까요? 먼저는 가족력입 니다. 부모님 중 한분이라도 변비가 있거나 대장질환이 있는 경우 에너지 장의 전달에 의해 자식들의 대장 기 능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변비 설사 등 각 종 대 장 질 환 을 가 질 수 도 있 습 니다. 두 번째는 과부하 입니다 대장을 혹 사시키는 것 곧 과도한 일을 하게 만 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평소 물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은 수분이 부족 하기 때문에 대장이 수분재흡수를 위 해 혹 사 됩 니 다 대 장 은 일 을 잘 하 기 위해긴장하게됩니다.물을과도하게 마시는 사람은 또한 여분의 물을 내 보기 위해 혹사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셋째인근장기의영향입니다 방광이나 자궁 같은 골반 강장내 장 기가 좋지 않을 경우 이웃한 대장도 영향을받습니다.같이긴장하게되는 것이죠. 넷째 대장에 좋지 않은 음식 이나 독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항생제 같은 약물들은 장 내 세균을 죽여 대장 내 세균 밸런스 를 깨뜨려 버리기에 대장은 긴장하게 됩니다.이와 같은 여러 원인에 의해 몸속의 물의 전체 양과 상관없이 대 장이 느끼고판단하기에 현재 몸에 물 이 적다고 판단되면 대장에서 물을 과 도하게 재흡수 하여 변비가 발생됩니 다. 설사는 반대의 경우이겠지요. 따 라서 변비의 치료는 일괄적일 수 없고 사람마다 원인이 다른 것처럼 치료 또 한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 다. 그러나 공통적인 치료가 있는데 긴장하고 오작동하고 있는 대장부위 를 찾아서 파 동 원리적으로 긴장을 해소해 주는 것입니다 이는 공통적인 치료입니다 이 와 더불어 선 행원인을 찾아 서 해 결 하 면 변비는 치료될 수 있 습 니 다 . 변비 의 학 상 식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자료제공:인체파동원리창안자박종부 문의:010-2336-7582 고사리는 절의의 상징이다. 고려가 망 하자 절의를 지키고자 두문동으로 들어 간현인들은백이숙제를비유하며「만수 산 배록동에서 고사리를 캐고 캐네 아침 에도캐고저녁에도캐지만그누구와함 께먹을까?아고죽군의두아들아」등많 은많은시문을남겼다.그러나백이숙제 가 은거할 당시 겨울철이라는 점이 부각 되면서 고사리를 먹지 않았다는 주장이 조선후기의 문인 유희(柳僖, 1773~1837), 『시물명고(詩物名考)』에 전해지고 있어 옮겨보면서잠시쉬었다가고자한다. [번역문]미(薇)는야생완두콩이다. 좌수(坐水)라고도 한다. 도랑 옆에서 자라는 덩굴 식물이기 때문이다. 대소 채(大巢菜)라고도 하는데, 소소채(小 巢菜새완두)와비슷하기때문이다. 소소채는 교요(翹搖)라고도 하며, 합 환목(合歡木자귀나무)과비슷하지만몹 시 작다. 지금의 ‘자괴밥’이다. 대소채는 완두와 비슷하다. 잎은 길쭉하고 둥글며 줄기는조금모가났고,꽃은자주색이며 열매는 가늘다. 『본초강목』에서는 열매 가없다고했는데그그림을보면열매가 작으니,열매가없다고한것은열매가많 은완두콩과비교했기때문임을 알 수 있 다. 그 줄기와 잎은 채소국을 만들 수 있 고, 열매도 곡식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러 므로 백이와 숙제가 캐어 먹은 것이다.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서는 육기 (陸璣)에 근거하여 풀이하였는데, 이것 이 옳다. 주자(朱子)는 호씨(胡氏)를 따 라서 미궐(微蕨)이라고 의심하였는데, 미궐은 지금의 자궐(紫蕨 고사리)이다. 『사기(史記)』를 말하는 자는 마침내 백 이숙제가고사리를먹었다고여겼다. 자서(字書)에 “미(薇)는 궐(蕨)과 비 슷한데가시가있고맛이쓰다.백이와숙 제가 먹고서 3년 동안 안색이 변하지 않 았다.”라고 하였다. 고사리는 연한 줄기 식물이니어떻게오래먹을수있겠는가. 더구나 상(商)나라가 멸망한 시기는 몹 시추운날씨였다.우리나라풍속에사신 이 늘상 마른 고사리를 싸 가지고 가다가 청성묘(淸聖廟) 아래를 지나면 삶아서 반찬으로삼으니,더욱우스운일이다. [원문] 薇卽豌豆之野生者也. 亦名 坐水, 以其蔓生溝渠傍也. 亦名大巢 菜, 以其似小巢菜也. 小巢, 一名翹搖, 形肖合歡木而至小, 卽今之둩괴밥. 大 巢, 略肖豌豆, 葉 圓, 莖微稜, 花紫, 實細. 本草無實, 而其圖亦作短莢, 知 其謂無實者, 比之豌豆之多實故爾. 其 莖葉可作蔬羹, 實亦充穀食, 故夷齊采 而食之. 孔疏據陸璣解之, 是矣. 朱子 因胡氏, 疑其爲微蕨, 微蕨卽今之紫蕨 也. 說史記者, 遂謂夷齊食蕨鼈, 字書 則云, 薇似蕨, 有芒味苦. 夷齊食之, 三 年顔色不變, 夫蕨屬柔莖, 安可耐久 服, 況亡商在大寒之候乎 東俗, 貢使 每齎乾蕨, 及過淸聖廟下, 煮以下飯, 尤爲笑資矣. -유희(柳僖, 1773~183 7),『시물명고(詩物名考)』- [해설]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정 벌하자천하가주나라를받들었다.상 나라 정벌에 반대하던 백이와 숙제는 의리상 주나라의 곡식을 먹을 수 없 다며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사리[薇] 를 캐어 먹다가 굶어죽었다. 『사기』 「백이열전」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 다. 이로 인해 백이와 숙제,그리고 고 사리는절의의상징으로자리잡았다. 조선 후기 박물학자 유희는 『사기』에 기록된 ‘미(薇)’의 실체를 파고들었다. 이시진의 『본초강목』, 공영달의 『모시 정의』, 육기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 주희의 『시집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 한결과,‘미’는고사리가아니라들완두 라는 결론을 내렸다. 방증도 제시했다. 산에 숨어 사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풀 보다는열매종류부터찾아먹는게순서 다.백이숙제가은거한지3년이지나도 록멀쩡했다는기록으로보아풀만먹지 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은나라가 멸 망한 때는 한겨울이니, 산속에 고사리 따위는없었다는게유희의주장이다. 백이 숙제가 먹은 풀이 고사리가 아 니라는 유희의 주장은 신선하다. 대부 분의 조선 문인들은 ‘미(薇)’를 고사리 로 이해했기 때문이다.이는 순전히 주 자 탓이다.주자는 『시집전』에서 “미는 궐(蕨 고사리)과 비슷한데 조금 크고 가시가 있으며 맛이 쓰다.[薇似蕨而差 大, 有芒而味苦]”라고 풀이했다. 주자 의 풀이는 호인(胡寅,1098~1156)의 해 석을 따른 것인데, 『시집전』은 『시경』 이해의 필수 텍스트였으니 ‘미’가 고사 리로굳어진것도무리는아니다. 이러한믿음에바탕하여조선사신들은 중국영평(永平)에있는백이와숙제의사 당 청성묘를 지날 때면 고사리로 국을 끓 여먹는퍼포먼스를벌였다.여러연행록에 서 확인되는 사실이다. 한번은 고사리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를 맞은 음 식 담당 하인이 백이 숙제를 원망하며 말 했다.“죽으려면그냥죽을것이지하필고 사리를캐먹어서내가매를맞게만드나.”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고증적 학문 태 도가 유행하면서 굳어진 해석에 의문을 품은사람이나타나기시작했다.‘미(薇)’ 가 고사리가 아니라는 주장은 유희만의 견해가아니다.이미1613년간행된『시경 언해』에서는면마과에속하는‘회초미’로 풀이했고, 『재물보』와 『광재물보』에서는 유희와 마찬가지로 들완두로 풀이했다. 각종 농서(農書)와 의서(醫書)를 보아도 조선문인들이‘미(薇)=고사리’라는오류 를 무작정 답습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 명하다.그들을바보취급하면곤란하다. 그렇다고 문헌에 등장하는 모든 ‘미 (薇)’를들완두로간주할수도없다.물명 (物名)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사람마다 달리사용할가능성이있기때문이다.하 나의물명이서로다른사물을가리키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이러한 현실이 ‘물 명고(物名攷)’라는 저술을 낳았다. 한자 물명을 한글로 풀이한 물명고는 문헌에 나타나는 물명과 실제 사물과의 간격을 해소하려는노력의산물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문헌을 볼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역관 조수삼(趙秀三, 1 762~1849)이 중국에 가면서 후박(厚 朴)이라는약재를십여바리나싣고갔 다. 책문(柵門)을 통과하자마자 중국 상인을 만나 흥정하니 값을 몇 배로 쳐 주기로 했다. 하지만 조수삼이 가져온 후박을본중국상인은말을바꾸었다. “이건 무슨 나무껍질인가? 후박이 아니 다.”조수삼은굴하지않고북경까지후박을 가져갔다.북경상인들이웃으며말했다.“이 게무슨물건이길래여기까지가져왔소?” 조수삼이 후박이라고 하자 모두 고 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버렸다. 누군 가가 진짜 후박을 가져왔다.?“이것이 후박이오.”중국의후박은자작나무껍 질처 럼 얇 고 매 운 맛 과 향 이 나 는 것 이 계피에 가까웠다. 조선의 후박과는 판 이했다. 조수삼은 힘들여 북경까지 가 져간 후박을 전부 내다버렸다. 원가에 운송비까지합치면손해가막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에 나오는 이야기다.중국과 조선의 물 명이서로달라빚어진에피소드다. 고사리를삶아먹던들완두를삶아먹 던 상관없지만,약재의 명칭을 잘못 풀 이하여 엉뚱한 약재를 사용하면 어떻 게 되겠는가.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 는 일이다.의학서에 실려 있는 수많은 약재의 실체를 일일이 검토하지 않으 면이런일은얼마든지벌어질수있다. 고문헌에실려있는이른바‘전통지식’ 을 이용하려면 물명이 지칭하는 사물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국립생물자원관등이 이러한작업을하고있다.그런데정작고 문헌을 전문적으로 연구, 번역하는 이들 은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고전의 현대화 는여기서부터시작이다.갈길이멀다. /글쓴이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 연구원 책임연구원(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문517호) 백이숙제는고사리를먹지않았다. [차한잔] 이번 호에는 수출입물품과 관련된 벌칙과 관세범 조사가 무엇인지 살 펴보고자한다. 세관에서 처리하는 업무를 크게 나누 어 보면 수출입통관, 화물관리, 항만감 시, 과세가격 심사, 관세범 조사 등이다. 이중관세범조사는수출입물품이관세 법 및 각 종 법령에 위반될 경우 사실관계 를 조사하여 벌금형에 상응하는 통고처 분을 하거나 관세법 등 법령위반으로 입 건하여검찰에송치하는업무이다.그리 고 관세범 조사를 수행하는 세관공무원 은"사법경찰관리의직무를수행할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에 의거 특별 사법경찰관으로지명받은공무원이다. 먼저 수출입물품 관련하여 관세법 에 규정되어 있는 주요 벌칙 규정을 보면다음과같다. 첫 번째 수출입관련하여 가장 중하 게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벌칙은 수출입금지품위반 죄이다.관세법제2 34조에는 헌법질서를 문란하게 하거 나 공공의 안녕질서 또는 풍속을 해치 는 서적·간행물·도화,영화·음반·비디 오물·조각물등과정부의기밀을누설 하거나 첩보활동에 사용되는 물품, 그 리고 화폐, 채권이나 그 밖의 유가증권 의 위조품·변조품· 모조품 등은 수출 입금지물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두 번 째 벌칙은 세관의 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출입하는 밀수출입죄이다. 즉 밀수출입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이다. 세 번째 벌칙은 수입신고를 하면서 실 제거래가격으로 신고를 하지 않고 실 제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고하여 관세를 포탈(탈세)하는 관세포탈죄이 다.네 번째는 법령에 따라 허가,승인, 추천, 증명 또는 그 밖의 조건을 갖추 어야 통관할 수 있는 물품임에도 이러 한 조건을 구비하지 않거나 허위로 구 비하여 부정하게 수출입하는 부정수 출입죄이다. 다섯 번째는 관세를 환급 받거나 감면받을 때 부정한 방법으로 환급받거나 감면받을 경우 처벌하는 부정환급 및 부정감면죄이다. 관세법 에는 위 벌칙규정외에도 관세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목적으로 허위신고죄, 과태료 부과규정 등을 두고 있다 . 수출입물품이 위 벌칙에 해당될 경우 관세범 조사 부서에서는 사실 관계를 조사하여 위반물품 금액이 일정금액 이하일 경우 통고처분을 한다. 통고처분은 피조사자가 법위 반사실을 시인하고 세관의 통고처분 에 응할 것이라고 진술하였을 경우 부과된다. 그리고 통고처분을 받은 피조사자가 벌금에 상당하는 금액을 15일 이내 납부하였을 경우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이 범죄사실이 확정되 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피조사자가 통고처분을 받은 후 15일 이내 이행 하지 않을 경우 세관에서는 고발장 과함께사건을검찰로송치한다. 관세법에는 관세범 사건에 대해 관세청장이나 세관장의 고발이 없으 면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관세범 사 건을 조사하는 세관공무원이 "사법 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 범위에 관한 법률"에 의거 특별 사법경찰관으로서 조사한 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할 때는 사건송치서와 고발장을함께송부한다. 수출입물품이 불공정하게 통관될 경우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 기 때문에 관세법은 관세범에 대해 엄격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 법 위 반 사실이 중할 경우 징역형 뿐만 아 니라 벌금도 병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 부과되는 벌금은 당해 위반물품에 부과될 관세액의 10배에 서 5배이다.또한 밀수출입죄로 처벌 받을 경우 밀수출입하려던 물품을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몰 수 할 수 없 을 경 우 그 물 품 금 액 상 당을추징하도록규정하고있다. /2018oyang@daum.net 상담전화 010-5858-2070 박상희 관세사 뱚관/세/상/식 관세사/원산지관리사 박상희(오양관세사무소)뱚 관세범조사와벌칙 본보는 8월 31일자 강원 태백시지부 청년회박재현회원을명예기자로위촉 합니다. 신임 박재현 명예기자는 강원 관광대학을졸업하고삼척MBC보도팀 에 근무한 이력이 있어 보다 더 생생한 사진과 언론보도로 강원지역 성손들의 소식을전할수 있을것 으로기대된다.박명예 기자는 현재 고려노벨 화학에 재직중이며, 태 백청년회에서 종사에 전념하고있다. [社告]븣본보신규명예기자위촉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