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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조왕 혁거세는 박씨의 유일조상으로서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신라의 국부다. 시조와 29세 경명왕(신라 54대왕)의 8대군주 중 첫째아들이 언침(彦忱)으로 밀양에 봉군되니 이가 본관을 밀양으로 하는 밀양박씨의 시조가 되며 후손들은 신라왕손으로 민족 문화를 꽃피워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시조왕 45세 현(鉉)은 고려 현종(고려 24대왕) 문과에 급제 집현전 부제학.수원.안변부사 벼슬이 사헌부 규정으로 문중가세를 크게한바 이가 규정공이며 후손을 규정공파라 하는데 우리 성산종중은 규정공의 후예이며 매년 경기 고양시 설단과 유택에 향배를 올리고 있다. 규정공 2세 좌랑공 문유(文有), 3세 상장군 사경(思敬)의 대를 이어 4세 침(忱)은 고려 충신으로 개성 두문동 72현의 한사람이다. 5세 강생은 의정부사와 집현전 부제학, 6세는 좌찬성 절문, 7세 공효공 중손은 대사헌. 이조판서 역임, 8세 미(楣), 9세 광영은 고려말과 이조에 명낭가의 틀을 마련하였다. 규정공 10세손 오정공 란(蘭)의 2자 숭원은 1532년 태어나 문과급제 명종.선조대 한성판윤. 대사헌 도승지 임진왜란 2등공신에 책봉 덕망과 청조로 세인의 신망이 되었고 충정공으로 추증 음덕으로 후손이 창성해 2시 기현. 3세 안길, 4세 효약을 배출하니 조선(祖先) 일체의 명문이 아니겠는가? 규정공이후 720여년 충정공 410여년 세월 동안 수 많은 전란 천재에서 외래세력과 부정한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국난극복에 뛰어든 선현들의 불같은 절의와 기개는 우리 문중의 오늘이 있게한 근원이었다. 밀양과 규정공 종가에서 발취한 족보의 심층분석과 청원 충정공 본부와의 합동 검토 탐사등으로 규정공 14세 효약의 2자가 명창을 확인하고 청원 선산에서 명창조를 이곳 선산에 이장하여 성역화를 마무리 하였음은 숭조정신을 계승 우리 문중 뿌리를 찾고 문중사를 확실이 정립한일이다. 따라서 효약 6자들의 불문명한 세조 정립은 문헌과 역사적 근거에 의해 족보상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규정공 16세 신지(新枝)는 서기 1680년경 이곳 용인 구성 동백 백현 고을에 정착 종족의 뿌리를 내리고 훈련원 첨정(종4품)을 역임하셨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