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page


90page

남자 공동막사 터 및 망대 이곳은 남자용 공동막사이고 밑에는 여자들의 공동막사가 있었다. 일제의 수탈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특히 종교계에 대한 탄압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안겨 주었다. 신사참배, 창씨개명 그리고 교회해산반대 등으로 인한 일경의 무자비한 탄압과 강제징집.징용을 피해 경향 각지에서 이곳에 피신해 온 20~30대 초반의 청년들과 교우들이 많았지만 이들을 신앙으로 환영했으며 그들을 양육하여 교회 지도자들로 세웠다. 이곳은 열악한 거처였지만, 믿음의 거장들은 꺼지지 않은 불꽃이었다. 교회에서 동남편 방향으로 200여m 떨어진 산 위에 일본 헌병이나 외부인의 접근을 살피는 망대로 쓰였던 돌무더기 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