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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증하고 싶소.” 2016년 7월, 필자가 유물기증 담당자로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 려왔다. 그분은 자신의 아버지께서 6·25전쟁에 참전하셨고, 당시 북 한군으로부터 노획한 괘종시계를 전쟁기념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 사를 밝혀왔다. 그동안 전쟁기념관에서 기증받은 유물 대부분은 훈 장 및 군장·사진류다. 그에 반해 ‘괘종시계’라는 유물은 매우 독특한 것이었기에 반가움과 호기심이 앞섰다. 기증자 조용훈 님은 생전 아 버님에게서 들은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아버님인 故 조경규 님은 해군병 5기생으로 해군에 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 당시에는 이등병조 계급으로 백두산함 주계장(主計長)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1950년 9월 15일, 백두산함의 승조원들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기 위해 인천 앞바다로 집결했다. 백두산함과 해군의 임무는 해병대가 인천 월미도를 점령할 수 있도록 함포 사격 으로 지원하는 것이었다. 또한 해병대 상륙 이후 해안 교두보를 확보 하기 위한 후속상륙작전 임무도 부여받았다. 조 이등병조는 후속상륙작전에 자원하여 전투를 치렀는데, 전우들과 함께 잔적을 소탕하던 중 그의 눈앞으로 한 북한 병사가 괘종시계를 품에 안고 뛰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보기에도 꽤 값이 나갈 것 같은 시계였다. 조 이등병조는 시계를 안고 뛰어가는 북한 병사를 뒤쫓아가 그를 사로잡았다. “이거 받고, 내 목숨은 살려주시오” 조 이등병조는 북한 병사에게 어디선 난 물건인지를 캐물었다. 그 는 “방공호 안, 지휘부 사무실에 걸려 있던 시계인데 난리 통에 서로 도망가기 바빠 이 비싼 시계를 들고 가는 이가 없어 내가 떼어 들고 가고 있었소. 이거 받고 내 목숨은 살려주시오”라고 말하며 조 이등 병조에게 괘종시계를 건넸다. 대신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간청하면 서….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 시계는 아니었지만 시계를 받고 적군을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북한 병사는 항복 의사를 밝히면서도 한 손으로는 시계를 굳게 움켜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조 이등병조는 문득, 살고자 하는 병사 의 마음이 느껴졌다. 찰나에 목숨이 오가는 현장에서조차 시계를 놓 지 못하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 보였다. 전쟁과 삶이 맞닿아있 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북한 병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마치 눈을 마주한 채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조 이등병조 는 시계를 받아들고 북한 병사를 헌병대에 넘겼다. 전쟁포로가 된 그 병사를 다시는 볼 길이 없었지만, 그와의 인연은 이렇게 괘종시계로 남게 되었다. 전후의 세월 동안 함께한 괘종시계 전쟁이 멈춘 지도 어느덧 70년을 바라본다. 북한 병사의 목숨과 맞 바꾼 괘종시계는 원래 있던 방공호 안의 벽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시계는 조 이등병조의 삶 속에서 매시 정각을 알리며 움직여왔다. 그 리고 조경규 님의 영면을 지켰다가, 2016년 전쟁기념관으로 인연이 이어졌던 것이다. 6·25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군인의 삶을 살았던 조경규 이등병조는 그 전공을 인정받아 충무·금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1961년 7 월 31일 해군상사로서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임무를 다하였다. 군 인의 시간이 끝나고도 괘종시계는 오래도록 그와 함께 있다가 2015 년 8월 13일 91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변함없이 시 간을 알려주었다. ‘WARI’라고 적혀있는 이 괘종시계는 매 시각 ‘댕~’하고 울린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의 마음에도 1950년 9월에 느꼈던 큰 울림이 매번 각인되지 않았을까? 인천상륙작전에서 노획한 괘종시계의 이야기는 여러 기증유물 사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았다. 기증을 받을 때마다 그 유물을 사용했던 분들의 삶을 떠올리며 그 이야기가 언젠가는 이 유물을 만날 관람객 들에게 전해지길 소망했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은 이렇 게 다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도 아니고, 오 랜 시간이 쌓이지도 않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 속엔 전쟁과 사람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번 가을, 전쟁기념관을 찾아 유물을 통해 수많은 전쟁 속에서 피고 진 이야기를 찾아보기를 바란다. 2 1. 故 조경규 옹이 가보로 삼은 괘종시계 2. 故 조경규 옹이 주계장 임무를 수행하던 백두산함(1950년 3월) 24 25 Vol.164 2019 Sept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