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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의 생존을 위한 노력 룩셈부르크 시의 명물인 아돌프 다리에서 보면 가장 먼저 눈 에 띄는 것이 시내 중심부의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웅장한 성채와 포대이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의 보크Vock 포대와 성곽은 룩셈부르크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를 알려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3개국 모 두 영국 런던에서 망명정부를 구성했다. 그곳에서 이들은 약소국의 비애를 톡톡히 맛보았는데, 이는 오늘날 베네룩스 Benelux 3국이 출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아무런 힘도 갖 추지 못한 명목상의 중립은 적국의 침공 앞에서 너무도 무 력하다는 것을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뼈저리게 체 험했다. 결국 베네룩스 3국은 중립정책을 폐기하고 나토 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하여 자신들의 생존을 우 방과의 동맹에 의존하게 된다. 이 작은 나라 역시 냉혹한 국 제사회에서 자국의 생존을 위해 강력한 군사동맹을 국가의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룩셈부르크 군사 박물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유료로 운영된다. 87 룩셈부르크 전쟁 역사 룩셈부르크 家의 창시자 아르덴 백작 지크프리트는 지금의 수도 룩셈부르크 시에 성채를 구축하고 AD 963년 독립하였다. 그 이후 1,000여 년 동안 에스 파니아·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의 숱한 침공과 지배를 받았으며 1·2 차 세계대전 간에는 독일의 점령으로 또다시 수난을 당했다. 특히 ‘북유럽의 지브랄타Gibraltar ’라고 불리는 언덕 위의 룩셈부르크 요새는 400여 년 동안 약 20여 회 적군에게 포위되어 전쟁을 치렀지만, 끝까지 민족의 정통성과 독립성 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시 연합군의 반격 통로에 위치한 룩셈부 르크는 본의 아니게 처참한 전쟁의 참화에 휘말려 전 국토가 초토화된다. 9 7.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독일군 헬멧 8.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미국제 폭탄 9. 절벽 위의 성곽과 요새 지형(세계문화유산) 10 11 Vol.164 2019 Septemb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