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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고지 탈환전. 소재지 :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산리. 전투기간 : 1950.3.16 ~ 9.24 유학산 839고지는 북고남저의 특징이 뚜렷하여 다부동을 남북으로 5호(대구 ~ 안동국도), 25호(대구 ~ 상주국도) 도로를 제압하여 대구를 공격하는데 가장 유리한 다부동의 격전장의 제1의 요지이다. 이 고지의 방어부대는 제1사단 12연대 1대대와 3대대, 그리고 11연대 3대대로 8월1일 낙정리에서 낙동강을 도하한후 지연전을 하면서 이곳에 방어선을 형성한 것은 8월 12일경이었다. 적군은 15사단 2개연대가 공격에 가담하였으며 8월 30일 이곳 진지를 미 제1기병사단에 인계하고 아군 제1사단 본대와 함께 영천방면 전투에 가담하였다. 9월 1일부터 미 제1기병사단이 이 지역을 방어하다가 북괴군의 총공세로 밀려 660고지(도덕산) 일대까지 후퇴하게 되었으나 9월 16일 유엔군의 총 반격으로 미 제1기병사단과 아군 제1사단이 이 지역을 탈환하고 잔적을 소탕한후 9월 24일 북진을 하므로 이곳 유학산 전투는 종결되었다.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 까지 55일 동안의 전투로 주야간 9회에 걸쳐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전투로 아군은 약 600여명이 손실을 입었으며, 낙동강 방어전투로 아군 1만여명이 희생되었고 적군 1만7천5백여명과 유엔군 약3천여명이 희생되는 전투를 치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