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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행돈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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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행돈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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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가 창자 속에 응결되어 있다가 그 때를 기다려 스스로 솟구친 것이라며, 조선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고자 했다. 이로 인해 선생은 성주경찰서에 8일, 대구감옥에 127일간 구속되기도 하였다. 이보다 앞서 선생은 1905년 일제가 국권을 박탈하자 대계 이승희선생등과 함께 청참오적소를 올렸고, 1907년에는 칠곡지역 국채보상회 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12년에는 만주 일대를 기행하며 독립운동의 기지를 물색하였고,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파리장서운동과 함께 선생의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1977년에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 1980년에는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된바 있다. 선생은 인동인으로 휘는 석영, 자는 순화로 회당은 그 호이다. 여헌선생의 9대손으로 고는 가선대부 형조참판 휘 시표이고 비는 정부인 서원정씨인데 한강선생의 후이다. 1851년 경상도 칠곡의 녹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여헌, 청천당, 사미헌선생으로 이어지는 가학전통과 한주 이진상선생의 문하8현가운데 1일으로 퇴계선생의 리학전통을 동시에 계승하여 대성한 오령의 거유이다. 올봄에 선생의 주손 세민보가 증조부 휘 우원이 지은 가상과 회봉 하겸진선생이 지은 묘갈며을 안고 불초의 복현루실로 찾아와 칠곡의 애국동산에 추모비를 세워 선생을 기리고자 한다면서 비문을 요청햇다. 북초가 선생의 흑산일록을 번역 출간한 바 있고, 평소 선생의 도덕과 실천을 숭앙해 마지않고 있던 터라 크게 사양하지 못했다. 이에 파리장서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한편 선생의 드높은 기개와 정신을 기리며 그 이력을 위와같이 간략하게 적고 다음과 같이 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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