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page


229page

3.1독립만세운동 기념비 기미년 3월 1일 정오 서울 탑골공원에서 폭팔한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였다. 이 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밀물처럼 퍼져갔으니 대구에선 3월 8일 서문시장에서 시작하여 두 차례는 남문 밖 지금의 염매시장에서, 마지막은 대명동 공동묘지 도로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만세시위는 왜경의 감시를 피해 남녀노소의 시민을 비롯해 계성학교, 대구고보, 신명여학교, 농림학교, 동화사, 심검당 학승, 성경학교 강습생등이 참여한 대규모의 독립만세운동으로 타올랐다. 이 네차례의 만세 함성은 팔공산까지 메아리쳐 미대마을 여봉산에서 대한독립 만세의 화톳불로 다시 피어올랐다. 4월 26일 낮 미대동 채갑원, 채의각, 채봉식, 채학기 등 4명이 채갑원의 집에 모여 거사모의를 한 뒤 밤 10시경 마을 동쪽 여봉산에 올라가 화톳불을 놓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외침은 다음날 낮에도 이어졌고, 28일 밤 10시경에는 일족인 채경식, 채명원, 채송대와 권재갑등 4명이 합세한 8명이 여봉산에 올라 또 다시 불을 피우며 수없이 만세를 외친후 자진해산하였다. 다음날 8명은 공산주재소 일경에 검거되었고 5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건지 4명은 8월, 가세한 4명은 6월의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아 옥고를 치루었다. 이렇게 마을 단위의 주민이 모여 만세운동을 펼친 일은 대구에서는 유일핟. 이에 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열의 숭고한 애국충절의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여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고자 그 뜻을 담아 여기 이 비를 세운다. 2019년 8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