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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의진에는 고광훈 고광수 고광채 박기덕 등이 참여하여 창평 저산 분암에서 창의의 기치를 올렸다. 4월 25일 능주사람의 협력을 받아 화순을 점령하고 일본 거주인의 가옥을 모두 불태워 관민들의 환영을 받앗다. 다음날 동복으로 진군하는데 광주부에서 파견된 관군과 합동하여 도마치전투에서 격전 후 일시 후퇴하였다. 고광순의진은 8월에 다시 신덕균의진과 합세하여 창평 제 심리 중심으로 집합 연락하여 대규모의 거사를 계획하고 인봉 고제량의 창안으로 불원복의 글자를 새긴 군기를 사용하여 군사들을 격려하며 훈련시켰다. 9월 11일 천지신명께 제사를 드려 맹세한 다음 9월 12일 행군하여 동복땅을 지나 곡성군 일본인이 많기로 유명한 동복읍을 우선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14일 새벽 동복을 공격 적을 ○산시킨 후 다시 남원 곡성 등지를 지나며 격문을 각 곳으로 보내어 인심과 사기를 고무하였다. 9월 17일 지리산 화개동으로 들어가 군사를 훈련시키니 동복 순천 곳겅 광양 구례 등지로부터 군사들의 참여가 점차 늘어 2천명에 이르게 되었다. 유진 훈련중에 윤영기는 신덕균과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광주 진위대의 해산병들을 수습하여 많은 군사들을 얻어 돌아왔다. 그후 10월 17일 구례 연곡사를 본영으로 정하고 부세를 개편하였다. 고광수 고광채 고광덕 고광명등 녹천 근친들은 유격과 호위를 담당하였고 신덕균은 참모. 윤영기는 호군에 임명되었다. 이떄 광주의 일본수비대가 이들을 공격해왔다. 이 전투에서 의진은 분전하였으나 의병장 고광순은 전사하고 고광훈등이 체포되자 의진은 흩어졌다. 그러나 마침 군사 소모차 나가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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