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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함풍이공 상순지묘 공의 휘는 문헌 자는 상순이며 호는 지암이고 본관은 함풍이고 시조는 고려신호대장군 휘 언이요 중조 득생의 9대손으로 국운이 날로 암울하던 서기 1888년 7월 5일에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서 고 휘 유인의 2남으로 태어났다. 모는 나주정씨이고 배는 해남 윤씨로 2남1녀를 산하다. 시운이 삭막하여 오직 향리에서 국학으로써 국치의 한을 달래더니 점차 인후광달한 천품이 출군하는지라 향인들이 두루 공을 말하여 비운의 동량이라 말했다. 때를 맞나 분연히 일어나 3.1운동에 투신하니 30세다. 이듬해 서기 1920년 4월 22일 우수영 보통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우수영영내를 향하여 들어오다 동교 훈도에게 발견되여 태극기를 빼앗기고 만세행진이 제지당하는 것을 보고 귀성유학생 양성용 동민 주영철 김종호 윤인섭 전유봉 최이규 주봉옥 박동수 박규성 이준섭등 동리 유지들이 나서서 연행된 학생의 석방을 요구하는 한편 만세운동의 전개를 계획준비하여 서기 1920년 4월23일 오후 8시경 다수 주민들과 학생들이 선두리 선착장에 모여 태극기와 격문을 나누어 들고 독립만세를 연창하는 시위행진을 주동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