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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신학교 제1회(1907년) 졸업생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독노회에서 임직을 받은 한국인 목사 최초 7인 중 한 명인 이기풍 목사는, 제주선교사로 파송되어 이듬해 정월 제주에 도착하여 성내교회 등 12개 교회를 설립하면서 제주복음화의 초석을 닦았다. 그 후 광주, 순천, 고흥, 벌교에서 목회하다가 1937년 10월, 70세의 고령의 나이에 이곳 우학리교회로 파송받아 돌산 안도 등, 근동 섬들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으며, 일본의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서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다가 1940년 11월 15일, 여수경찰서에 수감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겪고 병보석으로 출감되셨으나, 당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다가 1942년 6월 20일 여기 우학리교회에서 아름다운 순교의 반열에 오름으로 한국교회에 큰 감동을 주었기에 돌에 새겨 후세에 남긴다 주후 2008년 10월 24일 2012 복음엑스포, 여수제일교회, 국동제일교회, 무선중앙교회, 여수영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