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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마을 유래 여수에서 남쪽으로 34km, 면적 3.96km, 해안선 길이 29km로써 옛적에 섬과 섬사이에 있는 섬이라하여 안섬이라 불리웠으며 기러기가 날아가는 현상이라하여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 안도라 하였으나 후에 살기가 편안하여 편안할 안(安)자를 쓰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 돌도끼, 돌칼, 조개무지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세계4대 여행기중 하나인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보면 신라말 일본승려가 장보고 휘하 장수 김진의 배를 타고 중국 적산포를 떠나 구초도와 안도에 기착한 기록이 있으며 당시 안도는 신라국 왕실 방마산이었다. ​섬에 처음에 입도한 정(鄭)씨 내외를 모신 제당이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는 전라좌수영 방답진 소속으로 상산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국란극복의 주역이 되기도 하였다. 마을에 저잣거리가 있어 마을 번성함을 말해주었으며, 1860년 경신년 대화재 사건으로 300호가 전소 심장리, 우학리로 이주. 금오도 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여순사건의 회오리속에 죄없는 민간인 학살과 이야포만 민간피난 수송선 폭격사건의 뼈아픈 기억이 있다. ​마을에 들어선 주택이 한반도 지도를 닮았으며 섬 안에 호수를 품고 있는 마을로서 그대의 물결속에 두멍안 준설과 마을공동어업권의 내실화로 주민소득과 연도교 가설로 인한 일상생활권과 관광 남면의 중심권으로 살기 좋은 마을로 발돋음하고 있다. - 2006년 5월 안도주민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