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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7월31일 수요일 10 (제151호) 종합 강 원 동 해 시 용산서원 박영길 원 장 은 동 해 시 (동해시장 심규 언)와 한국문화 유 산 연 구 센 터 (센터장 김재홍) 에서 지난 6월5 일 오전 10시 ‘감 성 아뜰리에, 용산서원’의 첫 번째 프 로그램인 ‘동해 문화유산 서포터즈- 올’을 성황리에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이번 행사는 동해시 북삼초등학교 3 학년, 4학년(66명)을 대상으로 체험학 습과 연계해 동해시의 역사문화가 숨 쉬는용산서원을비롯하여동해시의문 화유산을답사하고이를참가자가직접 홍보하는프로그램으로 진행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추진하기 위해 직 접 초등학생의 유복을 맞추고 자료를 수집하는데 동분서주 했던 박 원장은 서원의 본래 목적인 강학과 전통문화 체험, 예절교육을 통해 지역 청소년 의 인성함양에 용산서원이 앞장 설 것을 박하용 의례부장 등 집행부와 함께다짐한다. 한편 이번 행사는 ‘동해 문화유산 서포터즈-올’은 지난 5월22일과 6월5 일 총 2회에 걸쳐 용산서원과 동해시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시작이 반이 다! ▲문화유산 서포터즈는 나야 나! ▲서당개 풍월을 읊다! 등의 세부 프 로그램으로진행됐다. ‘시작이 반이다!’는 문화유산에 대 한 이론 교육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상식 관련 강의에 덧붙여 서포터즈의 활동영역, 행동강령, 실천덕목 등에 대해서 배워보는 시간을 가지며 적극 적으로 문화유산을 홍보하기에 앞서 기반을다지는시간이었다. ‘문화유산 서포터즈는 나야 나!’는 본격적인 문화유산 탐방에 앞서 스스 로 문화유산 홍보물품을 만들어보게 해 앞으로 진행될 탐방에 대한 몰입감 으로유익함과재미를극대화시켰다. ‘서당개 풍월을 읊다!’는 이론교육 과 직접 제작한 홍보물품을 바탕으로 동해시의 문화유산인 ‘용산서원’, ‘동 해 구 상수시설(등록문화재 제142 호)’, ‘동해 구 삼척개발 사택과 합숙 소(등록문화재 제456호)’ 를 탐방하 며 문화유산 정화활동과 더불어 홍보 영상및사진촬영등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서당개 풍월을 읊다!’ 는 탐방과 더불어 진행한 정화활동과 문화유산 해설영상 및 사진을 편집해 유튜브 등에 게시하여 동해시의 문화 유산을 알리는 홍보활동으로 진행했 다. 한편,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참가자 들은 “문화유산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배울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며, “평소 경건하고 엄숙하게만 느껴졌던 용산 서원과 동해시의 문화유산을 꿈,희망 그리고 미래가 펼쳐지는 활기찬 공간 으로의인식하게되었다”고전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박하용 의례부 장, 김운기 재무부장, 김원용 교화부 장, 김상철 총무부장은 학생들에게 유복입고 절하는 법, 서원 내 출입예 절을지도하고이해를도왔다. 박영길용산서원원장‘감성아틀리에,용산서원’행사성료 서원본래목적살리고 청소년인성함양앞장 지난달5일‘감성아틀리에,용산서원’행사에앞서박영길원장서원을안내하고있다. 박영길원장 박흥식(朴興植 75세, 甲申) 前 신덕 왕릉참봉이지난6월28일성균관부관 장에선임되어취임고유례를마쳤다. 박 부관장은 사문진사공 후(后) 청 백리 이정공(휘 열)후손이다.청주대 상학부를 졸업하고 대한주택공사에 입사하였고, 재직 시 자부심을 갖고 정부정책사업 차관도입 관리로 국민 주거생활안정, 복지증진 향상기여에 노력을 다하였으며, 2002년 정년 후 (주)영광건설 전무를 지냈다. 2008년 5월 제16대 신덕왕릉 참봉에 도임해 탁월한 숭조심으로 재임기간 뿐 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경기도 성남에서 거리를 불문하고 10여년을 매월 삭망 에 빠지지 않고 숭덕전을 찾아 봉심 을 올렸으며, 밀양 밀성재를 비롯 김 제 삼송재(사문진사공), 이정공 종중 등 헌신적인 봉사를 해 옴으로써 종 친들의찬사가남다르다. “ 신 앙 생 활 도 하 는 데 ”라 며 더 체계적 인 예 절 수 업 을 위해 2002 년 성 균 관 을 찾았다며 성균 관과의 인연을 전한다. 성균 관 유학대학원 유 림 지 도 과 정 을 수 료 (교 육 우수 대학원장 수상)하고 성균관 전학, 전의, 전인, 사정위원, 전례위원(현), 석전보존회 원(현), 성균관 자문위원회 부위원 장, 성균관 상무위원, 문광부 후원 실 천예절지도사교육 이수, 성균관 한국 의 제사제도 수강, 성균관 인문학 5년 수강(현)했다.이를 계기로 문화제청 후원 환구단·사직단·종묘(태묘)·왕 릉·선농대제 전승자로 환구·사직·조 선종묘·숭모전·왕릉·선농 등 의 대제 헌관으로 수회 참제하였고, 대한제국 선포식재현 120주년(2017년)에는 의 정관(영의정역)으로참가했다. 조선 성종조에 청백리로 녹선되어 청백세가(淸白傳家)의 어필을 받은 이정공(휘 열)의 청백함을 삶의 신조 로 삼고, 퇴계 이황 선생을 좋아하여 매년묘소를찾아성묘하고있는박부 관장은 병역명문가족(병무청장 인증) 으로 선정되고 한국정책개발원 운영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비례물시(非禮 勿視, 예가 아니면 보지말라), 비례물 청(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듣지말라), 비례물언(非禮勿言,예가 아니면 말하 지말라), 비례물동(非禮勿動, 예가 아 니면 행동하지 말라)을 강조하는 박 부관장은 본보를 비롯한 언론 기고문 을 통해 청소년들의 인성함양에도 주 력하고있으며,현재밀양밀성재의자 문위원과 전례위원으로 후학양성에도 심혈을기울이고있다. 박흥식 前신덕왕릉참봉 성균관부관장 취임 뷺유교문화발전에 최선 다할 것뷻 서석단착공전모습. 지난10일뒷면전석을축조작업. 40%의공정률을보이고있다. 고려 벽상공신 박춘 선생을 비롯한 3代 4位의 제단 ‘서 석단’정비공사가 지난 달 21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이달 8 일착공에들어가작업이순조롭게진행되고있다. 이번 공사는 △단소 뒷면 웅벽 및 울타리를 철거하고 웅 벽 자리에 전석을 2단 쌓고 △바닥면 대리석 시공 △산신 제단 설치 △묘태석 설치 △돌 울타리 설치 △인도 콩자갈 깔기△계단설치및조경사업△주차장정비등이다. 대종회는 종재(宗財)가 없어 종원들의 성금을 의지해 종중을 운영하고 있어 이번 사업비 6천만원 또한 성금에 의지할수밖에없어종원들의후원과관심이관건이다. 이에 영배 회장은 지난 8일 현장을 방문 공사관계자를 격려하고 모금현황을 총무로부터 보고받은 뒤 종원들의 성원과협조를당부했다. 서석단은 좌상공이 고려 말 신돈의 모함으로 그들의 세 력에 의해 광양으로 유배 후 다시 울산 울주군의 열암사에 유폐되었다가 뒤따라온 신돈의 측근 왕인덕과 배인길에 의해 살해후 바다에 수장되어 유해를 찾지 못하고 사위 정 지장군의 생활근거지인 광주 북구 화암동에 후손들이 정 착하게 되어 제단을 마련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제단 에퇴락되어애를태웠다. 한편 종중에서는 각 소종중 분담금을 정하고 종중과 개 별 성금(10만원 이상) 등을 헌성비에 새겨 그들의 정성을 기리기로 하였으며, 25일 현재 접수된 헌성금은 2천6백50 만원으로 목표액 6천 만원에 크게 모자라 종원들의 성원 과관심이어느때보다요구된다. 밀성박씨 좌상공파 서석단 공사 순조롭게 진행 8월 중순 완공 예정븣후손 관심이 관건 박덕규(朴德圭 82세,丁丑)前 파사 왕릉 참봉이 지난 5월 28일 성균관 부 관장에취임했다. 밀양박씨 규정공 后 연안공 후손으 로 충남 천안에서 1937년 태어난 박 부관장은 천안중학교, 온양 토지개량 조합을 퇴직하고 밀양박씨낙촌공파 대의원 및 감사, 밀양박씨 관원 공, 지돈령공, 연 안공 사업이사, 연안공파 총무 이사, 2008년 5 월 파사왕릉 제1 7대 참봉에 도임 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천안에 시종친 회를 발족하는데 산파역을 맡았고, 이후에도 종친들의 보학 등 지도자로 서최선을다해왔다. 청소년들이 과격해지고 학교폭력 이 빈발하는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 고 있 어 이 또 한 관 심 을 갖 고 방 지 운동을 펼치는 등 청소년 인성함양에 심혈을기울여왔다. 박덕규 前파사왕릉 참봉 성균관부관장 취임 청소년 인성함양 심혈 기울여 밀성박씨 전국청년회 전(前) 감사 박갑동 현종이 제38회 대한민국미술 대전 서예부문에서 곽여(郭輿: 1058~ 1130)의 시 ‘소타는 시골노인’을 해서 체로써입선했다. 본격적으로 서예를 시작한지 6년만 의일이다.거창군위천면주민자치센 타에서 심왕용 선생에게 수학하다 최 근에는 집에서 혼자 실력을 쌓아 오 다 서울 방배동 신용호 선생에게서 월2회지도를받았다. 밀성박씨 전객령공 후손으로 총무 처에서 근무하다 입대하였고, 전역 후 함양군 안의면사무소에서 26년의 공직생활 후 2001년 청년회 창립멤버 로종사에헌신했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매 행사마다 솔선수범하고, 극진한 효자로 부모님 이 천수를 누리도록 하여 지역 주민 들의칭송이자자하다. 곽여의 시 소타는 시골노인을 소개 해 본다. [태평스런 얼굴, 아무렇게나 소를 탔다/ 안개비에 반쯤 젖어 밭둑 지나간다/ 물가에 오니 집에 다 온 걸 알겠구나/ 저 지는 해도 따라왔네 개 울물과 함께] (원문 太平容貌恣騎牛 半濕殘 過壟頭 知有水邊家近在 從他 落日傍溪流) 박갑동 현종 제38회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 븮곽여의 소타는 시골노인븯 비운의 독립운동가 이정 박헌영 선 생의 63주기 해원(解寃) 추모제가 지 난 19일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만기 사에서 영해박씨 박성수 대종회장을 비롯한 종원들과 불자 등 100여명이 참례한가운데열렸다. 이날 해원추모제는 이정선생의 아 버지 박현주, 어머니 탐진최씨·신평 인 이학주,형 박지영,형수 인동장씨, 부인 주세죽·윤례나, 딸 박비비안나, 혁명열사, 창의장졸 등의 영가 해원 (解寃)을 아들인 원경 대종사(속명 박병삼)의집전으로박성수대종회장 을 비롯한 참례자들의 분향과 헌작 등50여분에걸쳐진행됐다. 원경 스님은 제례 후 먼 곳까지 달 려와 준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정 박헌영은 우리에게 공산주자 로 낙인 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제 사 상과 이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그의 독립 운동사를 재조명 해보았으 면한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꿈꾸어온 서양 문물에 대한 열망은 1917년 러시아 혁명, 1918년 미국 월슨대통령의 민 족자결주의, 조선을 일본에 할애한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 33인 민족대 표의 처신 등을 지켜보며 무참히 빗 나갔고, 만세운동에 가담한 박헌영에 게는 공산주의 사상의 본격적인 유입 을 가져왔다. 박헌영은 뒷날 동양 현 대사의 최대 민중항쟁이었던 3·1운동 이 자신을 공산주의자 진영으로 이끌 었다고고백했다. 박헌영이 누렸던 학창생활은 조선 인 가운데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이런특권의식에젖은학 생들은 조국을 빼앗은 일본의 정신문 화를 숭배한 나머지 민족개량주의자 가되거나아니면친일파가되어갔다. 1920년 9월 조선에스페란토협회 창 립에 참여하고 사교부 소속 위원이 되었다.한국문학사연구성과에따르 면 창립당시 구성원은 선전부에 백남 규, 홍명희, 임창수, 이일, 임찬순, 김 진호,편집부에 장석태,김억, 김익진, 사교부에 박헌영, 신봉조, 번영로, 서 무부에 최익헌, 장세종 등이었다. 조 선에스페란토협회가 일경의 주목을 받으면서 박헌영이 3·1운동에 깊숙이 개입되었으면서도 체포되진 않았다 는사실이드러나기도하였다. 박헌영은 남북 모두에게 외면 받은 비운의 혁명가이기도 하다. 김일성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남노당계 숙 청작업에서 그를 미제 간첩 으로 체포 하여 1956년 7월 19일 처형했다. 당시 박헌영의 최후진술을 그가 원했던 자 주독립을 엿볼 수 있어 옮겨보면서 마무리해본다. 『나는 이 자리에 오기 훨씬 전부터 살아서 나갈 수 없는 신세임을 느끼 고 있었다. 이 재판은 말 그대로 요식 일 뿐, 어떠한 최후 진술도 너희들의 각본을 뒤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그렇다면결론부터말하겠 다. 너희들의 주장대로 나는 미제의 간첩이었다. 그러나 너희들이 주장하 는 미제 간첩과 내가 주장하는 미제 간첩은엄격히다르다.나는남조선에 있 을 때 아 니 그 훨 씬 이 전 부 터 미 국 사람들과 교분이 있었다. 그 교분은 조국의 해방과 독립된 통일조국 건설 을 위한 차원이지 결코 간첩행위가 아니다.남조선에서나는미군정고위 장성들을 만나 내가 통일 조국의 최 고 책임자가 되면 미국과도 국가정책 을 협의할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내가 약속한 그 협의는 현재 소련과 미국의 두 지도자가 서로 얼굴을 맞 대고 국제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1955년 12월 15일 재 판박헌영최후진술에서- 이정 박헌영 선생 63주기 해원(解寃)추모제 봉행 이정박헌영선생63주기해원추모제가지난19일경기도평택시소재만기사에서봉행된가운데참례자들이이정선생탑에서기념촬영 을하고있다. 평택 만기사븣영해박씨 종원,불자 등 100여명 참례 박헌영의아들원경스님이헌작하고있다. 박성수영해박씨대종회장이헌작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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