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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9년 6월 30일 (음 5월 28일) 일요일(신라기원 2076년) 전화:053-588-7300 제150호 12면(월간)뱚 인체파동원리 http://cafe.daum.net/jjongboo79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상주낙동강역사 이야기관. 문의:010-2336-7852 밀성박씨전국청년회(회장 순구)는 지난달 26일 죽산박씨 충현공의 부조묘 와 몽심재를 들러보는 선조유적탐방에 나서 선조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삶의 지혜와철학사상을알아보고,전남곡성 의 기차마을 장미공원을찾아 힐링의 시 간을가졌다. 이번 행사는 대종회 진국 명예회장과 재일 전(前) 파사왕릉참봉을 비롯한 부 산의 죽산박씨 영추재 문중(총재공파 인묵재공 后)임원진이 동행한 가운데 전국에서 모인 94명의 청년들이 함께했 다. 순구 청년회장은 호곡리를 찾아 불사 이군의 충절을 보인 충현공과 임진왜란 에 권율장군을 도와 혁혁한 공을 세운 초곡(草谷) 박계성 선생, 백이·숙제의 각오가 담긴 몽심재를 찾을 수 있어 무 엇보다 기쁘기 그지없다고 말하고 오늘 저 희 들 은 훌 륭 하 신 선 조 님 의 얼 이 살 아 있는 이곳 호음실에서 충효사상과 숭조 심 고취를 이룰 수 있었다며 배려해주신 상진 종손님과 문중 어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전했다. 충현공의 21대 종손 상진 현종은 94세 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날 순례단을 맞 아 찾아주어 고맙다고 말하고 충현공의 행적과 후손들의 입향을 소개하고 우리 모두는 선조의 음덕으로 지금에 있음을 명심해줄것을당부했다.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는 죽산박씨 50 0 여 년 세 거 지 로 불 사 이 군 의 충 절 의 표 상으로 두문동의 영수 충현공(휘 문수) 의부조묘와몽심재가있다. 隔洞柳眠元亮夢(격동류면원량몽, 마 을을 등지고 잠든 수양버들은 도연명 (元亮)을 꿈꾸는 듯하고)登山薇吐伯夷 心(등산미토백이심, 산속의 고사리는 백이의 마음을 토하는 듯하다)의 끝 글 귀를 딴 몽심재(夢心齋)의 재호(齋號) 에서 선조의 충절을 근본으로 삼으려는 후손들의 정성과 문간채에 들인 정자 요 요정(樂樂亭)은 연못이 단지 불을 끄거 나 허드렛일을 하기위한 용도가 아니라 세상을 관조하는 선인(仙人)의 자리임 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히 과거보러 가는 길손들의 쉼터와 하인들에게까지 도 배려해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 家必有餘慶)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 었으며, 전통 한옥에서 잘 꾸며진 정원 에 만개한 화초에 취해 잠시 휴식을 취 하기도하였다. ▶ 관련기사6,7면 1004종의 장미꽃의 향연이 펼쳐진 곡 성의 기차마을 장미공원을 찾아서는 본 보 상섭 국장의절친 윤영규 곡성군의원 과 곡성일보사 김래성 대표이사 발행인 의 도 움 과 안 내 로 삶 의 여 정 속 에 쌓 인 짐을 내려놓고 잠시 꽃향기에 취해 보면 서힐링의시간을가졌다. 특히 경상지역의 청년들은 전라도지 역의 아름다움과 정이담긴 인심에 반해 영호남 교류의 싹을 띄워보기로 하는 등 일정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청년 들의 돈독한 정을 쌓아 청년회 미래전망 을 밝 게 했 다 . 밀성박씨전국청년회는 신라경명왕의 적장자 밀성대군의 후예들의 모임으로 숭조 애종 육영의 3대 목표를 설정하고 매년 선조유적지 순례를 통해 자기계발 을 이 루 고 있 다 . ▶청년회 가입문의(010-3268-7300) 밀성(밀양)박씨전국청년회선조유적 탐방 밀성청년회선조유적탐방이 지난 달 26일전북 남원시수지면호곡리일원과 곡성 장미축제장을들러보는일정 속에성료됐다. 이번 유적탐방에는전 국에서94명의청년들이 참여했다. 남원죽산박씨집성촌호곡리 충현공박문수선생의부조묘를찾아참배후종손상진현종(오른쪽)이 인사말을듣고있다. 1592년 임진왜란 에 구국의 일념으로 의병도청을 설치하 고 군량미 조달로 관 군과 의병 사기진작 과 지역의 유풍을 진 작시켰던 회재 박광 옥 선생의 높은 학덕 과 충의정신을 기리 기 위 한 지 역 유 림 과 시민들의 발길이 줄 을 잇 고 있 는 가 운 데 벽진서원(원장 윤장 현 ) 은 5 월 2 8 일 오 전 11시 회재 박광옥 선 생의 위패를 봉안하 고 있 는 의 열 사 에 서 김하배(金河培, 전 광산구 유도회장) 집례관의 창홀에 따 라 서대석(徐大錫) 광주 서구청장의 분 향과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에 이어 헌작 하고 이어 유창중(柳昌重) 창평향교 유 도회장이 축관으로 독축하고, 정남호 (丁南鎬) 광주향교 원임, 김영풍(金泳 豊) 장성향교 유도회장의 아헌과 종헌 으로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속에서 추 모제향이봉행됐다. 벽진서원은 1602년 회재 박광옥 선생 의 학덕과 절의정신을 추모한 후학들이 광주 서구 벽진동에 벽진서원을 창건하 여향사(享祀)와교학에힘써왔다. 1681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배하 고 의열사(義烈祠)로 사액되었으며, 뒤 에 오두인(吳斗寅) 김덕홍(金德弘) 김 덕보(金德普)를 배향 해오다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그러므로 후손들이 1927년에 운리영당(雲裏影 堂)을 설립해 향사하였는데 도시개발로 선생의묘소와영당이편입되어,1999년 에 묘소를 이장하고 그 옆인 서구 풍암 동 769-1번지에 운리사(雲裏祠)를 세워 위패를봉안하고향화를받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지역의 뜻있는 유림들 과 학자들 그리고 사림이 벽진서원위패 봉안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곳을 벽 진서원이라 하고 유림봉사(儒林奉祀) 를 결정하면서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리 사를의열사로,학문을 강학하는강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쪽에 모현당(慕賢 堂), 서쪽에 숭본당(崇本堂)이라 편액 하고 지난해 복설향사에이어 이날 지역 유림과 후손등 200여명이 참례한 가운 데엄숙봉행되었다. 벽진서원에는 선생의 유집목판(遺集 木版,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이 소장되어 지난 5월 16~17 양일간에 걸쳐포장훈증작업을벌였다. 도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벽진서원 복원은 지역주민들의 정서함양은 물론 지역 청소년들의 인성교육 함양에도 크 게기여할것으로보인다. 회재 박광옥 선생1526년 1월 26일 광 주광역시시 서구 매월동 회산에서 성균 관 사예인 곤(鯤)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음성(陰城)이고 자는 경원(景 瑗)이며 회재는 호이다. 21세에 소과에 합격하고, 향약(鄕約)을 만들어 향리의 예속을 교화시켰다.선생의 덕망이 높아 지자 44세에 학행(學行)으로 내시교관 을 지내고 49세에 운봉현감에 제수되었 으며 별시(別試)에 합격해 예조정랑 사 헌부지평과 성절사서장관으로 명나라 에 다녀왔고 영광군수 밀양부사 등을 역 임한 후 향리에 돌아와 개산송당(蓋山 松堂)을 짓고 후진양성에 매진했다.159 2년 선생이 67세 때 임진왜란을 당해 전 국이 왜적에게 유린되어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다. 선생은 인근에 살던 고경명(高敬命) 나주의 김천일(金千 鎰)과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민족을 구 출하자고 다짐하고 의병을 모집해 김천 일과 고경명에게 출전케하여 큰 성과를 올 리 게 하 고 뒤 에 서 의 병 과 군 량 을 확 보 하여 그 뒷바라지를 도맡 았다. 광주목사 권 율 (權 慄)이 천 여 명 의 광 주 군 사 로 이 치대첩을 거두고, 이어서 전라순찰사가 되어 만 여 명의 호남의병을 이끌고 북진 할 때 군사와 군량을 공급했으며,대흥사 의 승 장 처 영 (處英)을 함 께 참 여 시 켜 행 주대첩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한 것도 선생의 역할이었다. 선생은 67세의 고령에도 나주목사에 취임하여 국난을 극복하는데 전념하다가 병환으로 사임 하고1593년10월26일에별세했다. 한편 이날 제향은 오전10시 30분 강당 숭본당에서 엄격한 예법에 의한 제물 봉 진례에의해제수가준비되었고,선생의 약력 소개와 함께 제향이 봉행된 가운데 윤장현 원장은 우리문화가 살아 있는 곳 은 원 사 (院 祠 ) 의 예 (禮 )가 아 닌 가 싶 다 고 말하고 전통예절의 보급과 발전에 앞 장서자고 말하고 참례한 유림도반 모두 에게 감드린다고 하였으며, 초헌관으로 헌작한 서대석 서구창장은 벽진서원이 회재 선생의 충의정신을 기리고 지역주 민과 후손들에게 잘 전달될수 있도록 노 력할것을다짐했다. 벽진서원보존회 박상배 이사장은 벽 진서원이 우리 지역의 문화유적지로서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고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제관 을 비롯한 참례원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 를 빼놓지 않았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 s1012@hanmail.net) 벽진서원븮회재박광옥선생추모제향 봉행븯 높은학덕과충의정신기려 회재박광옥 선생의높은학덕과 충의정신을기리는추모제향이 지난 달 28일위패가봉안된광주서 구벽진서원의열사에서지역유림과 후손등20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봉행되었다.(사진독축광경) 제향에참례한 제관이 한자리에모였다. 윤장현 원장이 인사 말을하고있다. 박상배이사장 일제 강점기 우리민족의 애환과 이주 사를 그려낸 븮두만강은 말한다, 밀양박 씨 일가 중국이주 백년사븯 출판기념회 및 강 연 회 가 지 난 달 2 8 일 -2 9 일 수 원 경 기문화재단 ‘다산홀’, 군포문화예술회 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면서 우리 에게선보였다. 븮두만강은 말한다븣븯는 ‘한 밀양 박씨 일가의 중국이주 백년사’를 기록한 회 고록이다. 구한말 함경도 경흥 땅에 모 여 살던 밀양 박씨 일가 중 박의도(1864 -1925)가 식솔들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 넜다. 이때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 토히로부미를저격하던해봄이었다. 아오지 근처 게바위나루터에서 나룻 배를 저어 두만강을 건넌 이들은 강물이 휘돌아가는 중국 훈춘 회룡봉 마을에 터 를 잡았다. 이 책은 이때부터 지금에 이 르기까지의 가슴 아픈 회억을 담고 있 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 1919년 3븡1운 동 및 상해임시정부 수립, 1931년 만주 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1945년 8븡15광복, 1950년 한 국동란븣. 한반도 역사상 유래 없이 질 곡의 삶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들, 이들 의 이야기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 다. 책의 원저자인 박남권(1942~)은 이주 4대손이다. 회억의 중심을 이루는 항일 투쟁사와 남북분단사는 할아버지, 아버 지 세 대 와 4 촌 , 6 촌 형 제 들 이 그 주 역 을 맡고 있다. 일경의 괴롭힘에 병들어 죽 은 할아버지 창일, 죽음의 사선에서도 용감하게 항일의 선봉에 섰던 백부 지 영,근영형제,남편의뒤를이어항일후 근부대원으로 활약하다 총격에 쓰러졌 던 할 머 니 , 6 븡2 5 전 쟁 당 시 남 과 북 으 로 갈라서 교전을 벌였던 남표, 남룡 6촌간 의 전쟁비사,급기야는역사의소용돌이 속에서 멀리 소련, 중앙아시아 등지로 흩어져 7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 구한가족비사븣. 원저자는 생존한 친족들의 증언을 듣 기 위 해 이 들 나 라 들 을 찾 아 가 구 술 을 직접 기록하고 국내외 역사기록물과 사 진자료를 찾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을기울였다. 편저자인 신완섭은 이런 그의 노력을 높이 사서 중국에서 2015년 출간된 원저 자의 븮두만강변에 서린 애환븯 2쇄본을 토대로 이를 각색 편집하여 대한민국에 서도출간하게되었다. 비록 본인이 회억의 중심에서 약간 비 켜 나 있다 해도 ‘전설로 되어있는 가족 의 지난날 역사를 밝히기 위해, 그 문제 의 실체를 캐기 위해 고생을 마다않고 두 발로 이곳저곳의자료를 찾고 가족과 고향 친인척들을 방문하면서 자신이 마 치 그 사실을 목격하고 있거나 그 과정 을 겪고 있다는심정으로 묻고 기록해야 만이 비로소 자기가 쓰고 싶고 표현하려 는 내용을 비교적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다.’고 보는 그의 집필관을 원저 도처 에서느꼈기때문이다. 주어와 술어로만 이루어진 책 제목 븮두만강은 말한다븣븯는 1형식의 주체적 인 문장이다.두만강물이 한민족의 눈물 로 비유되듯, 이들이 살아온 100여 년간 의 삶의 궤적은 두만강 그 자체와 진배 없다.목적어를 의식하지 않고 쏟아내는 밀양 박씨 일가의 가족사는 한 가문의 역사를 뛰어넘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대 변한다. 경기문화재단 민간공모 ‘3븡1운 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문화 콘텐츠 선정작’인 븮두만강은 말한다-밀 양 박씨 일가의 중국이주 백년사븯는 다 함께 돌아봐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인 것이다. 한편 강연회에서 원저자인 박남권 현 종은 뷺진달래가 피고 지는 고향땅에는 선조들의 피와 눈물이 묻혀있어서 저는 지난날의 기구했던 가족사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뷻라고 하였으며, 편저자인 신 완섭씨는 ‘두만강이 말하는 가슴 아픈 민족사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합니 다 역사를 등진민족에겐 미래가 없으니 까요’라며 일제강점기 잃어버리고 유린 된 우리의 아픈과거를 거울삼아 기억자 고강조했다. ▶강연문4면 한편 ‘두만강은 말한다’ 총 366페이지 분량으로 고다 출판사(010-2757-6219 에서펴냈으며정가는1만7천원이다. 븮두만강은말한다,밀양박씨일가중국이주백 년사븯 출판기념회및강연회가져븣3븡1운동및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으로민간공모한문화컨텐츠선정작품 상 주 ( 상 산 ) 박 씨 대종회(회장 종송) 임시이사회가 지난 20일 오전 11시 상주 시 사벌면 화달리 영 사전 관리사에서 이 사회 구성원 19명중 12명이 참석한 가운 데개최되었다. 이날 이사회는 회장인사,감사패증정, 신규임원소개 안건토의 순으로 진행된 가운데 지난 3월 제9대 회장으로 추대된 종송(鍾淞) 회장은 부족한 사람을 회장 으로 선출하여 주신데 다시 한 번 더 감 사드린다고 말하고 임기 2년 동안 선배 님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계승 발전하 는데 노력하겠다며 함께할 석순 사무총 장을 소개하고 임원여러분의 지도편달 과 성원을 당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어종중발전을이루자고말했다. 신임 석순 사무총장은 사벌왕 31세손 으로 상암공 后습득공(휘 世燾)의 후손 이다. 행정직공무원 화성시청 국장으로 정년퇴임 후 종중일에 헌신해왔고, 현 안곡서원사무국장을맡고있다. 유공자 표창에는 임기동안 종원들의 화합과 대종회 발전을 이룬 직전 준형 회장에게공로패가전달되었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사벌왕비능 사초 의 건, 사벌왕릉 제대설치의 건, 정숙공 파 합류의 건, 2019년 예산 변경의 건으 로 △사벌왕비릉 사초의 건은 경북 예천 군 예천읍 대심동 대모곡의 고분으로 고 증을 통해 할 수 있도록 보류하고 △사 벌왕릉 제대 설치의 건은 관세위, 망례 위,산신제단으로회장에게위임키로함 에 따라 종송 회장은 헌성하려는 독지가 와 협의해 추향대제이전 설치를 완료하 겠다며화답했다. △정숙공파 합류의 건은 임원회비 납 부를 원칙으로 하여 원안대로 처리하고 회장이 정숙공파 집행부 임원진과 상의 후 원만하게 진행하도록 위임하였으며 △2019년 예산 변경의건은 예비비를 줄 이고 대신 사무실 관리비를 증액하는 원 안대로 처리했다.총회에서 처리된 예산 안 중 사무실 관리비가 실제 비용대비 적게 편성되어 종회 사무실 및 왕릉의 소모성 경비에 대한 예산이 미편성 되어 집행에 어려움이 있어 이날 예산을 적절 하게 조정한 것이다. 기타 토의 시간에 는 영사전 신도 설치 건,왕릉 소나무 벌 목, 제복정비의 건으로 영사전 신도 설 치는 회장단 위임, 소나무 벌목은 관청 과 협 의 , 제 복 정 비 는 본 보 상 섭 편 집 국 장과제향일이전마무키로하였다. ■박종송회장프로필 경기 화성 生/ 사벌왕 30세손/ 염광상업고등 학교 졸업/ 금화어패럴 대표/ 한솔자동차 운전 전문학원 대/ 참판공 송 정파 회장/ 참판공파 부 회장/ 상암공후 판서공 파총무/상암공파총무/신라경애왕릉참봉. 상주(상산)박씨대종회임시이사회성료 화기애애한분위기속애종실천으로발전기대 지난 20일임시이사회에참석한 임원진이 사벌왕릉을찾아참배하고기념촬영을하고있다. 박석손사무총장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