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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의 벽 이곳은 과거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기독교인들, 민중 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노동자, 학생들이 투옥되고 고초를 당한 대구형무소(1910~1971)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을 주도했던 장진홍(1895~1930) 선생이 일경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결,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민족저항 시인인 육사 이원록(李源祿, 1904~1944) 선생도 위 사건에 연루되어 이곳에 수감되었는데, 이것은 선생이 40년 생애 동안 17차례나 감옥을 드나드는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죄수 번호가 '264'이어서 '육사'라는 필명을 여기서 얻었다고 전해지며, 또한 처녀작 '황혼'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60주년기념관 터는 형장(刑場)이 있었던 자리로 대한광복회 총사령관 박상진 선생이 1912년 사형 순국한 곳이기도 합니다. 비록 자취는 없지만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준 분들을 통해 갈보리의 길을 생각하는 깨달음의 은혜가 있길 바라며 이 벽을 세웁니다. 201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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