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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모 선생은, 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그는 대구노동공제회(大邱勞動共濟會) 농민부 위원과 대구노동친목회(大邱勞動親睦會) 상무서기(商務書記)로 있으면서 1925년 9월 29일 서동성(徐東星)·방한상(方漢相) 등과 함께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진우연맹은 당시 회원이 천백여명에 달하던 대구노동친목회(大邱勞動親睦會)를 그 세력권 하에 두고 있었다. 또한 일본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반역아연맹(反逆亞聯盟)등과 관련을 가지면서 연계투쟁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그는 방한상과 함께 진우연맹에서 이러한 대외교섭을 주도하였고 투옥된 박 열(朴烈)에게 의연금을 송부하기도 하였다. 동 연맹에서는 항일운동의 구체적 방법으로서 향후 2년내에 대구부내의 도청·경찰서·우편국·법원을 비롯하여 관서·일본점포를 파괴하는 한편, 지사(知事)·경찰부장·관아(官衙) 수뇌부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하여 파괴단(破壞團)을 조직하고 중국 상해에 있던 무정부주의자 유 림(柳林)을 통하여 폭탄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던 중 동 연맹원 안달득(安達得)이 일경에 피체되어 그의 집이 가택수색을 당한 결과 진우연맹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926년 7월 일경에 피체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