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page


213page

성삼재의 유래 삼한시대에 진한 대군에 쫓기던 마한왕이 전쟁을 피하여 지리산으로 들어와 심원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적을 막으며 오랫동안 피난생활을 하였다고 하여 그때 임시 도성이 있었던 곳을 달궁이라고 불렀다 합니다. 그 당시 마한왕은 달궁을 지키기 위하여 북쪽 능선에 8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하여 팔랑재(八郞峙), 서쪽능선은 정장군으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하여 정령재(鄭嶺峙), 동쪽은 황장군이 맡아 지키게 하였다 하여 황령재(黃嶺峙), 그리고 남쪽은 가장 중요한 요지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다 하여 성삼재(姓三峙)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해발 1,090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