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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을사늑약과 1910년의 경술국치로 한반도는 조선왕조 건국 27대 519년 만에, 대한제국이 성립된 지 18년 만에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일제강점기 36간 우리민족은 식민지 침탈을 극복하고 민족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항쟁을 벌였다. 유림은 항일의병투쟁, 독립운동단체결성, 자결순국, 상소 등과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으며, 그 중에서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파리장서운동)은 전국의 유림이 조직적으로 참여한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이다. 1918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에 이은 세계정세의 변화와 1919년 1월 고종의 갑작스러운 붕어 소식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고종의 장례를 계기로 국내에서는 천도교, 불교, 기독계가 중심이 되어 3월 1일 독립선언문이 공포되고, 대한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다. 3.1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유림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Paris peace conference)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독립청원서를 독자적으로 보내기로 결의한다. 영남유림을 대표하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이 장문의 글을 짓고, 호서유림을 대표하는 지산(志山) 김복한(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