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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비문(碑文) 한국전쟁 전후, 담양지역에서는 좌익과 빨치산 그리고 군인과 경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인민군들의 진격으로 7월 23일 광주.전남에 주둔한 국군과 경찰이 후퇴하면서 한 때 인민공화국 통치권에 들어갔다. 그 후, 9월 15일 한미연합군의 인천상률작전 성공으로 인민군들이 퇴각하면서 산간지대로 은신하며 저항하였다. 이에 전시수복 명령을 받은 국군11사단 20연대 병력과 경찰 및 경찰토벌대가 담양지역에서 인민군 및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민간인을 통비분자, 부역자, 입산자 그리고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고한 양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심지어 부녀자와 임산부까지 살해하는가 하면 산간오지 마을의 가옥을 이유로 무고한 양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심지어 부녀자와 임산부까지 살해하는가 하면 산간오지 마을의 가옥을 불태우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그럼에도 희생자들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처형당한 좌익분자라는 누명을 써야했고 가족들은 혈육을 잃은 슬픔조차 숨기면서 반세기가 넘도록 억울한 세월을 살아야 했다. 비록, 사건 당시가 전시였다 하더라도 국군과 경찰이 적법한 절차 없이 비무장 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하는 것이며 헌법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탈한 것이다. 그동안 60여년이 지났지만 국가는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실을 외면한 채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았다. 마침내, 2005년 과거사 정리를 위한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하여 학살피해의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사실이 밝혀졌다. 국가가 희생자들의 부당한 누명과 공권력이 행한 학살의 실체를 확인하고 인정한 것이다. 이에 사법부는 적법절차 원칙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불법행위라고 판단하고 국가가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피해를 배상하고 아픔을 위로하도록 판결하였다. 그리하여 담양군 유족회에서는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의 일환으로 담양군수의 협조를 받아서 유서 깊은 담양군 갑향 공원에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을 세우게 되었다. 서기 2018년 9월 書(서) 合江(합강) 최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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