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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남(金貴南, 1904.11.17 ~ 1990.1.13) 출신지 : 전남 목포(木浦) 운동계열 : 학생운동 훈격(연도) : 대통령표창(1995) 1921년 11월 열강(列强)의 대표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군비감축회의(軍備減縮會議)를 개최하고 만주를 비롯한 원동문제(遠東問題)를 의제로 거론한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서는 이승만.서재필.정한경 등을 대표위원으로 선정하여 워싱턴 군비감축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韓國獨立請願書)를 제출하였다. 1921년 11월 14일, 전남 목포의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에 재학 중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워싱턴 군비감축회의에서 거론될 한국 독립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동교 학생 및 사립영흥학교(私立永興學校)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다. 1921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