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age


75page

음악가 정율성(1914~1976) 선생 생가 音乐家 鄭律成(1914~1976) 先生 出生 故居 이곳(광주 양림동 79번지)은 한.중 양국의 우호정신을 음악으로 실천하신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정율성 선생이 태어나신 생가이며, 선생은 바로 이곳에서 숭일소학교를 다녔습니다. 정율성 선생은 전주의 신흥중학교를 3년 수확한 후 항일운동을 위해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남경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졸업하였고, 의열단(義烈團)에 참가하여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한편 남경.상해에서 음악공부도 충실히 하였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정율성 선생은 중국의 진보적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던 연안으로 옮겨 루쉰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성악교육을 담임하였으며, 조선의용대의 무정(武亭)장군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깊은 동지애를 나누었습니다. 중국의 아리랑으로 회자되는 〈연안송〉,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가로 지정된〈팔로군행진곡〉은 모두 이 시기에 창작된 것입니다. 일생동안 교향곡을 포함 360여 곡이 주옥같은 노래를 작곡하여 현대중국음악사상 최고의 음악가로 평가되는 한.중 우호의 예술혼 정율성 선생은 20세기 광주가 낳은 항일운동가이자, 동아시아의 음악을 발전시킨 혁명음악가이며, 세계 평화와 우의를 실천한 훌륭한 민간외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