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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형(尹致衡) 1893.9.10. ~ 1968.11.17. 애국장(1990) 밀양시 내이동 997 이곳은 윤치형 선생이 태어나 꿈을 키운 곳이다. 선생은 1913년 김대지, 황상규 등과 함께 청춘의 일편단심을 합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해 일한다는 비밀결사 '일합사'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9년 고종의 국장일을 맞아 선생은 윤세주와 함께 상경, 탑골공원의 3.1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가져와 을강 전홍표 선생과 논의 후 3.13 밀양면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일경을 피해 중국으로 망명한 선생은 지린(길림)에서 의열단이 창립될 당시 의열단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헌신적으로 후원하였으며, 의열단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의열단의 제1차 국내기관총공격 거사 당시 국내에 잠입하였다가 체포된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서 5년간의 옥고를 치렀고, 그때 만들어진 폭탄은 선생이 제공한 자금으로 제조되었다. 출옥 후 밀양청년회 활동, 군청 이전반대운동, 신간회 밀양지회 정기대회 대포, 신간회 경남도지회연합 발기준비 홍보 담당, 신간회 밀양지회 집행위원 등을 통해 밀양의 사회운동에도 앞장섰던 선생은 해방 후에는 제4대 의령 군수와 참의원 의원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