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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열사 충정공 조병세 1827년 : 서울 회동에서 출생.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치현(稚顯), 호는 산재(山齋) 1859년 : 중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87년 :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역임 1889년 : 한성부윤을 거쳐 의정부 우의정 역임 1893년 : 의정부 좌의정 역임 1894년 : 갑오경장 후 가평에 은거 1905년 :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79세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향리 가평에서 상경, 늑약 파기와 을사 5적 처단을 요구하는 상소와 함께 백관들을 이끌고 대한문 앞에서 항쟁을 주도했다. 일본 헌병들에 의해 일시 구속, 가평으로 강제 퇴거 당했으나, 12월 1일 다시 상경, 항쟁을 계속하는 중 일본 헌병대에 의해 제지 당하자 고종과 각국 공사관, 국민들에게 보내는 유서 3통을 남기고 음독 순국 자결하였다. 12월 3일 「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 등에 선생의 순국소식과 유서 전문이 실려 일제 침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이후 활발히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에 큰 자극과 격려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62년 : 건국공로훈장 대한민국장 중장 추서 2011년 : 묘소를 선영인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서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4묘역에 이장, 안치 2019년 05월 30일 건립 건립 : 이달희(고손부), 조범식(육세손), 최광선(육세손부) 협조 : 양주조씨대종회, 자암 김장현(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