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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르다. 다만 사진 보존원판 번호 369번 임명애, 370번 어윤희, 371번 유관순의 사진 배경이 감옥 창살 아래 벽돌건물로 모두 같은 것으로 보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고, 일제는 이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연번을 부여한 것으 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사진 보존원판 번호가 분리된 560번 신관빈은 사진 배경이 나무 건물인 것으 로 보아 이들과 별도로 촬영한 것이다. 사진 보존원판 번호 851번 박정선, 852번 이신애는 입감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연번이 위 인물들과 떨어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 역시 연속된 번호로 같은 사건으로 수감되었음과 사진의 배경으로 보아 두 사람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촬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유관순과 어윤희, 신관빈은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여구치감) 8호 감방에 함께 수 감되었다. 이때 같이 수감된 인물은 유관순, 어윤희, 신관빈과 더불어 권애라, 임명애, 김향 화, 심명철 총 7명으로 확인된다.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되었던 이들은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경 유관순, 어윤희의 주도 로 3·1운동 1주년 옥중투쟁을 함께 전개하였다. 여옥사에서 울려 퍼진 만세의 함성은 모든 여옥사는 물론 남옥사에까지 번져 서대문형무소 모든 옥사의 만세운동으로 발전되어 일제를 당혹하게 하였다. 90 이로 인하여 유관순은 심한 고문에 시달렸다. 그의 수형기록카드상 사진은 이때 왼쪽안면 부위를 손바닥과 주먹으로 집중적으로 20여 차례 이상 가격 당한 며칠 후 촬영된 것이다. 따 라서 그의 얼굴, 특히 왼쪽 뺨은 5~6㎜가량이 부어 오른 안면부종(顔面浮腫)인 상태였고, 코 안도 부어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호흡곤란 때문에 사진을 촬영할 때도 입을 약간 벌리 고 있는 모습으로 찍었던 것이다. 사진을 보다 확대하여 보면 왼쪽 눈 부위의 충혈도 확인할 수 있다. 91 이러한 상황에서의 촬영으로 유관순의 얼굴은 좌우의 비례가 맞지 않는 비대칭의 모습으로 찍혔다. 따라서 18세 소녀 유관순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여성 수감자들의 혹독한 감옥생활과 처우는 신관빈의 회고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90 이정은, 『3·1운동의 얼 유관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0, 32~37쪽. 91 조영진, 박경목, 박진호, 최원호, 「유관순 얼굴의 3D 디지털 복원과 활용방안」, 《충청문화연구》 13,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68~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