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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이 사진 보존원판 번호는 어느 시점에서 수형기록카드를 재정리 또는 재작성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번호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인 물들은 동일사건으로 피체되었거나 피체 시기가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 착안하여 여 성 수감자 180명을 ‘가나다’ 순서로 배열한 〈표 14〉를 ‘사진 보존원판 번호’ 순서대로 재배열 해 보면 〈표 15〉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재배열 결과를 분석해 보면 첫째, 카드가 남아있는 여성 수감자는 서대문형무소에 1919년 4 월부터 수감되기 시작하여(어윤희) 67 1944년 8월경까지 수감(백선옥)되었다. 여성 수감자 카드 의 가장 빠른 보존원판 번호는 366번(김순호)이고, 가장 마지막 번호는 65,036번(백선옥)이다. 둘째, 사진 보존원판 번호를 통해 연대별 수감 인원과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1920년 대는 보존원판 번호가 366번~9,188번(강정희)까지로 약 10,000여 명의 인원이 수감되었 고, 1930년대는 보존원판 번호가 11,548번(이영자)~42,378번(한계순)까지 약 30,000여 명 이 수감되었다. 1920년대에 비해 1930년대는 수감 인원이 3배나 증가하였다. 식민지 지배가 장기화될수록 강화되었던 일제의 ‘사상범’ 감시와 탄압의 결과가 수감자 수치로 드러난 것이 다. 1940년대는 1944년까지 4년간 보존원판 번호 44,662번(김성녀B)~65,036번(백선옥)까 지 약 20,000여 명이 수감되었다. 1930년대 10년간 30,000여 명이 수감되었던 것에 비하면 1940년대는 4년간 20,000여 명이 수감되었으므로 수감 인원은 75% 증가하였다. 해를 거듭 할수록 심해졌던 식민지 대민 통제가 감옥 수감 인원의 증가로 나타났던 것이다. 67 <어윤희 등 2인 판결문>, 경성지방법원, 1919.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