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page

195 해제 〈표 8〉 A의 김순호, 이신도, 노순경 세사람은 거주지가 경성 세브란스 병원의 연합의학전 문학교 간호부 양성소 기숙사로 되어있다. 함께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것 이다. 45 B의 이수희, 김경화 등 24명 가운데 소은숙, 소은명, 지은원 세사람을 제외한 21명은 거주 지가 모두 배화여학교 기숙사로 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같은 학교 동료들로서 항일운동에 참여하였고, 제외된 세사람도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과 언도일이 같은 점으로 보아 같이 활동한 것이다. 46 C에서 거주지가 신설동 132-46번지로 기재되어 있는 최화순과 신명예, 김명순, 박소순 등 4명은 직업이 모두 여공(女工)이었고, 1934년 5월 20일 동시에 검거되었다. 관련 자료를 추적해 보면 이들은 소위 ‘조선 내 적화공작사건’에 연계되어 함께 수감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47 D의 이병희와 이효정은 이재유의 지도를 받으며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효정이 먼저 검거되었고 1년여 후에 이병희가 검거되었다. 그럼에도 주소지가 청량리 88번지로 같은 것 은 이들이 고종사촌간이라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48 E의 화동 47번지로 기재되어 있는 이운향과 김완흥은 신사참배를 집단적으로 거부한 등 대사 사건으로 수감된 인물이다. 이들의 거주지 화동 47번지가 해당 종교의 교회였는지 일 반 가정집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종교적 활동을 같이 한 사람들의 모임 장소로 볼 수 있다. F의 휘경동 189번지는 심재순, 민인숙, 박순임, 차양순, 정갑복, 황영임, 최광순, 이정남, 채정희 등 9명이 같은 주소지를 썼고, 이들의 직업은 모두 공장 노동자였다. 이들은 검거일 이 별도로 기재되지 않았으나 카드에 기재된 사진 촬영 날짜가 모두 1941년 6월 24일로 같 은 점으로 보아, 1941년 6월경 검거되었다가 동시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던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피체 당시 이들의 나이는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여공들이었다. 이들 가운 데 박순임은 1941년 11월 12일 출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최광순은 1942년 2월 5일, 민 인숙은 같은 해 3월 2일, 나머지 6명은 같은 해 3월 6일자로 출소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45 <노경순, 이도신, 김효순, 박덕혜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1919. 12. 18. 46 <이수희 등 경성지방법원 판결문〉1920. 4. 5. 47 <경성제국대학 교수 삼택녹지조를 중심으로 한 조선 내 적화공작사건 검거에 관한 건>, 경기도 경찰부, 1934. 8. 31. 48 이병희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