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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즉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3·1운동 관련 판결문 중에 극히 일부가 신문들을 통하여 공개되었다. 일제의 철저한 독립운동 탄압으로 독립운동가 판결 내용은 대부분 공개되지 않았다. (2) 해방 이후 ‘3·1운동 판결문’ 자료집 편찬 해방 이후 3·1운동 판결문은 1959년 이병헌 편집 출판의 『3·1운동비사(秘史)』, 23 강덕상 편집 출판의 『현대사자료』(26), 24 김정명 편집 출판의 『조선독립운동』Ⅰ 25 에 수록되었다. 그런데 이들 책에서는 각 판결의 성격을 조명하는데 필요한 예심에서 고등법원 판결까지의 판결의 흐름을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26 더구나 강덕상과 김정명이 편집 출판한 책은 일본에서 일본어로 출판되어 아쉬움이 있었다. 이후 1972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5권으로 3·1운동 판결문이 한글로 번역 수록되었다. ‘삼일운동재판기록’이라는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자료집에는 1919~1921년에 기소 판시된 3·1운동 관계 형사사건 판결문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원문은 수록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 또한 일제강점하 평양복심법원 관할 하에 있던 평안도·함경도·황해도 등 지역의 지방법원 판결문과 경성복심법원 관할 하의 함흥지방법원 판결문을 입수할 수 없었고,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공주지방법원·부산지방법원의 판결문은 6·25한국전쟁 전후 인멸되어 수록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수록한 판결문은 약 700건, 피고 인원은 6,000명이었으니 1919년 5월 31일까지 보고된 피검자 총수 46,948명의 1/7이었다.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5권이 간행된 지 약 20년 후인 1990년부터 1996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의 11권부터 27권으로 3·1운동 재판기록을 간행하였다. ‘3·1운동’(Ⅰ-ⅩⅦ)이라는 부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공판시말서, 예심조서, 검사조서 등 3·1운동 판결을 위한 문서들이 번역되어 원문과 함께 수록되었다.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이 간행된 지 20년 후인 2014년과 2015년에 3·1운동 판결문은 23 이병헌 편저, 『3·1운동 비사』, 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24 姜德相 片楮, 『現代史資料』 26(朝鮮 2), 東京 : みすず書房, 1967. 25 김정명 片楮, 『朝鮮獨立運動』 1分冊(民族主義運動 篇), 東京 : 原書房, 1967. 26 김승일, 앞의 논문, 2011, 151~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