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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튀기고 놀러오는 조선청년들의 가슴 속에 독립사상을 불러 일으켰다. 화류계에 출입하는 조선청년치고 불온한 사상을 가지지 않은 자 없게 되고 서울시내 백여 군데 요정들은 어느덧 불온한 이들의 음모를 위한 소굴로 화하였다. 간혹 일본인들이 기생집에 놀러가는 일이 있어도 그 태도는 냉랭하기가 얼음같고 이야기도 않거니와 웃지도 않는다. 더구나 노래와 춤을 청해도 받아 주지도 않는다. 잔을 내밀면 묵묵히 술을 따를 뿐, 때가 되면 묵묵히 사라지고 만다. 그 분위기야말로 유령들이 저승에서 술을 마시는 기분이다. 독립만세 후의 서울 장안 화류계는 이처럼 불온하고 험악한 공기로 더욱 조성되었다. 총독부가 아무리 좋은 정치를 하고 군대와 경찰이 아무리 호령을 해도 사회의 이면에 이와 같은 불온한 소굴이 남아 있는 한 조선사회의 치안유지는 성절(成切)될 듯 싶지가 않다.” 162 10) 전라북도 전북에서의 3·1운동은 3월 3일 군산·이리·전주 등에 「독립선언서」가 일반인들에게 배포되면서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2,000장을 간사인 인종익(印宗益)이 가지고 와 3월 2일 이리에서 이중달(李仲達)에게 일부를 전하고, 나머지는 전주로 가져와 전북의 천도교 조직망을 통하여 금마·김제·여산·용안·이리·함열 등 10여 개 지방에 나누어 주었다. 3월 5일 군산·옥구를 비롯하여 13일과 14일 전주, 16일 태인, 23일 오수, 4월 4일 이리와 만경 등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163 이 자료총서에 수록한, 전라북도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여성은 기전여학교의 학생 김공순(金恭順)·김나현(金羅賢)·김신희(金 信熙)·김인애(金仁愛)·최요한나(崔堯漢羅)·함연춘(咸鍊春), 그리고 정신여학교 학생 박순애(朴順愛)이다. (1) 전주(全州) 전주에서의 3·1운동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164 전주에는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졌다. 3월 1일 서울 천도교구 인종익이 전주 천도교 교구실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자, 162 千葉了, 『朝鮮獨立運動秘話』, 帝國地方行政學會, 1925 : 정요섭, 「한국여성의 민족운동에 관한 연구 : 3·1운동을 중심으로」, 『아세아여성연구』 10, 숙대출판부, 1971, 312~313쪽. 163 홍석영, 「3·1독립선언과 임시정부」, 『전북지역 독립운동사』, 전북지역독립운동추념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1994, 337·339쪽. 164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3, 1979, 496~501쪽 ; 최종삼, 「전주3·1운동 회고록」, 『신동아』 1965년 3월 ; 김진호·박 이준·박철규, 앞의 책, 2009, 145~147쪽 ; 이재근, 「남장로교의 전주 신흥학교·기전여학교 설립과 발전(1901-1937)」, 『한국기 독교와 역사』 42,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