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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총 설 8) 논산군 논산에 독립선언서는 민영순(閔泳淳)이 3월 2일 오후 6시경 독립선언서 약 40매 2묶음을 논산교구실에서 김태호(金泰昊) 등에게 전달하여 도착하였다. 이는 충남지방에 도착한 최초 의 독립선언서이다. 이 선언서는 3월 2일 부여와 3월 3일 논산 읍내에 배부 및 배포되었다. 강경읍에서는 3월 10일·20일·27일 엄창섭(嚴昌燮)·송재기(宋在紀)·문상희(文商羲) 등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엄창섭은 3월 5일 군산영명학교 강금옥(姜金玉)에게 독 립운동을 권유받고 3월 6·7일경 부여 세도 창영학교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과 강경읍 장날 군민·군중·청년들에게 태극기를 주며 독립운동을 하기로 협의하였다. 그는 3 월 8일 강경읍에서 용지 60매·염분 30전 어치를 구입하여 학교에서 고상준·추병갑과 태극 기를 제작하였다. 이어 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도 불러 10일 아침까지 태극기 200기 를 만들었다. 서삼종(徐三鍾)은 엄창섭의 부탁으로 태극기를 가마니에 넣어 강경 옥녀봉으로 운반하였다. 엄창섭 등은 읍내에서 독립만세를 호소하여 정기섭(鄭沂燮)·한규섭(韓圭燮) 등 의 찬성을 얻었다. 이들은 오후 3시경 옥녀봉에서 엄창섭 등이 배부한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어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부르며 읍내 웃시장으로 내려 와 만세를 권유하여 군중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군중들은 ‘한국독립만세’ 깃발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일본인 거주지 본정통을 경유하여 시장과 읍내 각처를 행진하였다. 3월 20일에는 송 재기·이근석(李根奭)·이봉세(李鳳世)·이근국(李根國) 등이 태극기 360기를 휴대하고 옥녀 봉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들은 웃시장으로 내려와 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하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서정 방향으로 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문상희는 3월 26~27일 “일본인이 조 선인을 대우함에 있어 비리무도(非理無道)하니 차제에 조선을 독립시키는 운동을 일으키자” 라는 경고문 약 100매와 “조선독립시위운동을 위하여 상가를 폐쇄토록 하자”라는 철전문제 (撤廛問題) 수십 통을 만들었다. 그는 3월 27일 밤 읍내 각 집에 배포하고, 이성삼(李成三) 집 에서 성석진(成錫鎭)에게 경고문 약 10여통을 주어 북정에 배포를 부탁하였다. 두마에서는 4월 1일 오후 6시경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배영직(裵榮直)은 체포 하려는 고야(高野)순사를 손과 주먹으로 때리고, 이어 금자(金子)순사의 머리와 음낭을 가격 하고, 군중에게 “지금부터 자신이 수창자가 되어 조선독립만세를 주창하는데 일동도 화(和) 하여 만세를 고창하라” 외쳤다.